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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영화와일상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2. 22. 07:39

알아챔.

-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위험을 무릅쓰고 수많은 민간인들의 작은 배들이 고립된 군인들을 구하러 오는 장면도 감동적이었지만, 간신히 구조되어 열차에서 잠이 든 후 깨어났을 때 군인들을 감싸고 있던 그 햇살이 내겐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욱하며 눈물을 흘릴 뻔했다. 영화 속에서 처음 등장하는 햇살이었다. 따뜻한 햇살,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 그렇다. 그것은 평화였다.


이미 그들에겐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의미를 상실한 일이었다. 단 한 가지,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들 스스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진정한 구원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다. 구원은 전적인 타자의 은혜다.


고국에 발을 딛은 후 수고했다는 말을 들은 한 군인이 되물었다. 고작 살아남아 왔는데 무슨 수고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고 의미심장했다. 살아남은 것 자체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전쟁 영화가 많지만, 영화 덩케르크가 내게 남긴 잔상은 역사적 배경과는 무관했다. 살아남음의 의미, 다시 누리는 평화, 일상으로의 초대. 우리에겐 무감각하기만 한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의 조각들이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군인에겐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왔을까? 햇살에 눈이 부셔 잠을 깰 수 있다는 사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으로 다가왔을까?


알아챈다는 것은 나그네된 백성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정착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되면 감사함을 잊어 버리는 동물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적절한 불안정감 속에서 인간은 더욱 겸손할 수 있으며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는 어린아이의 마음가짐이 된다. 편리함과 군림함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과 아주 가깝지만, 그것들은 기어이 인간의 마음에서 감사함을 제거하고야 만다. 높은 자들에게서보다 낮은 자들에게서, 안정한 자리에서보다 불안정한 자리에 있는 자들에게서 인간다움이 더 잘 드러나고 감사함이 더 잘 표현되는 이유다.


우리가 가진 육체의 유한함을 깨닫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미 대부분의 우리들은 어느 정도 정착해 있고 안정감을 누리고 있다.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각자의 위치에서 통제권을 쥐고 군림하기도 한다. 감사함은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유한함을 자각한다는 것은 그 흐름에서 떠밀리지 않고 나그네된 인간의 정체성을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유한한 몸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인지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게 무감각한 채로 시대의 조류에 떠밀려 살다가도 제한됨을 느낄 때, 우린 잠시 멈출 수 있고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자각할 수 있으며 더 큰 흐름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나라의 법에 우리를 맞출 수 있다. 또한 성령을 그 동안 근심시키고 소멸시켜 왔다는 사실도 자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찰나의 순간이 성령이 역사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얻을 수 있는 이러한 엉뚱한 영감이 난 참 좋다. 누군가는 너무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그 프레임에 맞춰 이해하는 게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그 어떤 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하나님나라를 묵상할 수 있음이 좋다. 오히려 더욱 이런 알아챔이 많아지고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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