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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우월감, 폭력의 시작.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 건 어쩌면 하나의 도피일지도 모른다. 심금을 울리는 풍성한 현악기의 연주와 가끔 홀로 주목받아 아름답고 가느다란 멜로디를 연주하는 관악기의 연주,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하나가 되어 전체 곡을 리드하는 피아노의 연주는 들어도 들어도 매혹적이지 않을 수가 없어 내 눈을 감고 마음문을 열게 만든다. 그러면 이내 내 지친 영혼은 수줍게 자리에서 일어나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소리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고나면 난 다시 달라진 것 하나 없는 현실에 홀로 남는다. 황홀하고 환상적이었던 그 기분은 삽시간에 증발되어버리고, 기쁘게 받았던 위로는 처절한 외로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위로를 인간적인 것이라 경시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위로를 받으라고, 일상과는 전혀 상관없이 교회당에서 하는 예배시간에 더 많이 참석하라는 말을 들을 때, 난 이제 콧방귀가 뀌어진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무엇인지 수차례 체험도 해봤기에 그것이 가지는 깊이와 가치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유효기간이 있는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 역시 나는 알아버렸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비교하며 인간의 예술을 땅바닥에 쳐박아버리듯 멸시하고 폄하하며 그것들에서 위로를 받는 이를 무시하는 행위를 이제 난 반대한다. 결국 그들의 논리는 이원론에 기반한, 소위 ‘영적’이라는 가치에 함몰되어 한쪽으로 치우친 한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과 육을 그런 식으로 나누지 마라. 그건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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