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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Perhaps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0. 15. 15:48


Perhaps.


수백명 이상의 전체 교인 평균 연령이 약 27세이며, Hollywood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 Mosaic에 방문하여 오전 예배에 참석했다. 주차나 예배 안내를 하는 사람들도 모두 20대였다. 대형교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교회에는 그렇게나 부족한 허리 연령대가 여기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마치 대학청년부 예배에 참석한 것같이 다시 젊어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예배의 시작은 온몸이 쿵쿵 울릴만큼 증폭되어 ccm을 리드하는 드럼 소리였다. 모든 잡음들을 흡수해 버릴 것만 같았다. 콘서트 무대 앞쪽에 배치된 커다란 스피커 앞에 앉아있는 기분이라고 하면 그때 내가 느꼈던 심정을 그나마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설교는 사무엘상 14장 6절이 핵심이었다.


Jonathan said to his young armor-bearer, "Come, let's go over to the outpost of those uncircumcised men. Perhaps the LORD will act in our behalf. Nothing can hinder the LORD from saving, whether by many or by few."


그 중에서도 설교자는 Perhaps 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참고로, 개역개정 한글 번역으로는 “...일하실까 하노라.” 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그것을 Faith 와 연결시켰는데, Perhaps 와 Faith 의 중간다리로는 우리 삶의 Uncertainty 를 들었다. 주제문 중 하나는 “Know that you don’t know.” 였으니, 하나님을 알고 믿고 신뢰하는 것의 표현이 Certainly 나 Surely, Definitely 등의 강한 뉘앙스의 단어가 아닌 Perhaps 라는, 마치 믿음이 적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단어에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나 역시 예전에는 질문의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고, 또 의심하면 분명히 오해받았을 ‘구원의 확신’에 대한 부분이나, 하나님의 방법과 뜻, 그리고 그의 성품에 대한 부분에선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이런이런 분위시니까, 분명히 이 상황에서도 이렇게 하실 거야.” 와도 같은 확신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나도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깊이 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게 흐리멍텅해지는 건 아니다. 난잡하게 느껴질만큼 다채롭고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들을 만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점점 더 흔들리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정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변치 않으시며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다는 것이다. 변하는 많은 것들을 어떻게든 통과해내면서 변하지 않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성숙한 믿음의 성장과정이 아닐까 싶다. 덧붙여 개개의 사람과 사건은 이런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품고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창조자는 창조물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며 그것은 언젠간 드러나게 되어있다.


Perhaps 라는 단어 안에는 하나님이 충분히 하실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과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렇게 하실진 확실하지 않다. 그렇게 하셔야만 하나님이 되시는 것도 아니며,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하나님은 변치않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약한 뉘앙스의 이 단어에서 성숙하고 깊은 믿음을 본다. 나의 사사로운 유익을 넘어선 순수한 믿음의 고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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