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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제어된 찔림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1. 5. 06:19

제어된 찔림.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것의 유입을 거창하게 환영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자신을 열어젖히는 행위는 무한한 가능성으로의 용기있는 도약이기에 자신을 닫아두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이는 자아로 통하는 내면의 문에 평생 걸쇠를 걸어둔 채 살아가다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런 시기를 맞이하는 건 축복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의 유입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대체하거나 수정, 보완하지 않는다면 결코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몸과 하나가 되어버린 일상의 행위들의 재정비에 있습니다. 그것은 리모델링이 될 수도 있고 재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것들이 부서지고 파괴되어지는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을 겪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자신을 개방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필연적인 고통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그 중엔 많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낮아지는 경험에 늘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찔림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마음이 찔리기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찔림의 목적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이 아무런 변화 없는 찔림에만 갈급한 건 아닌지요? 찔림의 미학을 제어하거나 막지 마시길 바랍니다. 제어된 찔림은 날선 검과 같지만 운동력이 없어 찌르기까지만 할뿐 쪼개는 단계까진 가지 못합니다. 찔려서 상처만 투성인 상태가 되어버리지요. 멀쩡한 몸을 자랑하고 싶다면 상처가 없는게 더 나을 것입니다.


자신을 열어젖힌다는 것은 새로운 것들의 유입을 허락하는 단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들어와서 잘못된 것들을 수정하고 파괴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고통을 받아들이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구속 이후에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개는 일시적이지 않습니다. 구속받은 자도 계속해서 죄를 짓듯 회개 또한 계속되는 것입니다. 찔림의 운동력을 제어하지 마십시오. 아무쪼록 쪼개지십시오. 부서지십시오. 파괴되어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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