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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갈등전환, 그리고 번역작업 맛보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1. 16. 06:41

갈등전환, 그리고 번역작업 맛보기.


번역의 맛을 조금 보니 번역이란 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를 일상생활에서 비교적 불편하지 않게 사용할 줄 안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내가 영어를 한국어보다 훨씬 못하기에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번역 경험이 있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리 틀리진 않은 것 같다.


번역은 그저 한 언어에서 다른 한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텍스트의 깊은 해석과 컨텍스트의 풍성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며, 그것들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또 다른 차원의 글쓰기이다. 두 언어는 두 문화이며, 그 서로 다른 두 문화를 매개하는 언어 이면에 내재된 정서를 포함한다. 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번역은 결코 쉬운 게 아닐 것이다. 또한 결국 책이란 게 독자에게 읽혀지기 위한 것이기에,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기 위해선 필력도 따라줘야 하는 것 같다. 이는 책을 많이 읽어본 경험이 필연적으로 요구되며, 많이 써본 경험 또한 필수불가결하다는 말이다. 즉, 번역 작업은 어쩌면 일종의 창조행위와 같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저녁, 허현 (Hyun Hur) 목사님이 이끄시는 ‘Conflict and Justice Study Group’에 참석했다. 갈등전환과 회복적 정의에 대한, 내가 도통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던, 그러나 우리에게 꼭 필요했었지만 우리가 놓쳐왔던 (아뿔싸!), 영역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난 거기서 이성적인 깨달음과 함께 정서적인 울림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Mennonite Central Committee에서 편집한 ‘Conflict Transformation and Restorative Justice Manual’이라는 제목의 책을 여러 그룹들과 함께 공동 번역을 하는데, 그 중 하나로 내가 겁도 없이 참여를 해본 것이다 (번역이 목적이 절대 아니었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노출을 과감하게 즐기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갈등전환과 회복적정의에 관한 170여개의 아티클이 실려있다. 나는 고작 몇 개의 아티클을 초벌 번역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 조차도 내겐 너무너무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궁극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의 stepping stone으로써 내가 더 온전한 하나님나라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내리라 믿는다.


그 동안 한국 보수교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던 나는 ‘갈등’ 자체를 죄악시여기는 분위기에 익숙하다. 갈등이 생겼다는 것은 곧 사탄이 개입했다는 의미와도 같았고, 그것은 개인의 경건함과 믿음과 기도로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어제 허현 목사님께로부터 들었던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갈등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어쩔 수 없는 과정 중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변화는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인데, 변화에 노출되었을 때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갈등을 어떻게 처리할지 교육받지 못했다. 세상 학문이라는 이분법적인 배제와 혐오의 논리로, 그 어느 곳보다 더 많이 더 빨리 교육했어야 할 교회에서는 이런 교육을 의도적으로 거절해온 게 사실이다. 어찌보면 나 역시 그 무지와 미신적인 종교의 피해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서야 이렇게 하나씩 배우며 삶을 보듬는다. 그동안 내게 있어 흑과 백으로 각인되어진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알고보면 모두 삶의 일환인 것을. 차이를 배제와 혐오로 배격하지 않고 풍성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귀한 요소라고 여길 수 있는 눈이 내게도 더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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