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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예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8. 11. 15. 09:06

예배.


날 맞이한 묵직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예배당의 높은 천장까지 가득 메우며 풍성한 음을 내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영혼을 울리는듯한 그 소리는 내 마음을 또다시 열어젖히고 관통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순식간에 얼어붙는 기분과 함께 숙연해진 마음으로 어느새 경건한 자가 되어 있었다. 내 눈은 표면이 아닌 심연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영혼은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정경 (Paul Kyung Jung) 집사님의 배려 덕분에 두 번째로 뵙는 곽건용 (Gunyong Kwak) 목사님과 처음 뵈었던 이유진 (Yoojin Lee) 집사님은 이미 내가 오늘 방문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난 마치 예약해놓은 손님처럼 따뜻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 방문한 향린교회, 그곳에서 처음 참석한 예배, 함께 나눈 떡과 포도주. 내겐 파이프 오르간 소리보다 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향린교회는 누구나 환영 받는 교회였다. 높은 자와 낮은 자의 구분은 저 멀리 사라져버린 구시대의 유물이었고, 예수의 복음을 이미 아는 자와 알고 싶어 하는 자, 상처 받은 자, 억눌린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환대하며 그들과 함께 하는 교회였다. 자발적인 성도들의 참여와 깨어진 (깨어져야 마땅할) 목사의 권위가 돋보였다. 중보기도를 나누는 시간에 성도 중 한 분이 손을 들고 즉석에서 기도 제목을 나누는 장면을 나는 목격할 수 있었고, 기도 후 앞에서 인도하시던 목사님께서 성가대와 함께 성가대원으로서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찬양을 드리는 모습도 난 목격할 수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목사 한 명의 권위에 휘둘리는 체제의 잘못된 한국 교회 시스템에 길들여져 왔던가! 이는 내게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되어있었고, 그것이 오늘 향린교회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 날 아프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 향린교회 주보에도 적혀 있듯이, 담임목사만이 목회자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목회자인 것이다. 목사와 성도 사이에 허물없이 나누는 삶의 대화, 그 살아 숨쉬는 대화. 아.. 얼마나 난 이런 걸 바래왔던가!


현재 향린교회는 전체 30-40 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작은 교회였지만, 거기엔 분명히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심을 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하나님께 예배한 것 같다. 방문자에 불과했던 나도 그들 중 하나로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사실이 참 귀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목사님께서 헤어질 때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하느님도 아프다'라는 제목의 목사님 저서다. 지금 밀려있는 책들이 많지만 시간 내서 읽고 감상도 남겨야겠다. 이런 교회가 있음을 알게 해주신 정경 집사님께 감사 드리고, 아들을 잘 보살펴주시고 친절하게 환대해주신 이유진 집사님, 그리고 곽건용 목사님께 진심으로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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