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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함께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0. 16. 12:44

함께.

가끔은 대형 서점에 들려 아직은 불투명한 미래를 머리 속에 그리며 책을 뒤적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수업을 일찍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홀로 책상 앞에 앉아 한적한 오후를 만끽하며 감상에 젖어 글을 끄적이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언제나 마음만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불안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던, 나의 20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선 가느다란 빛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잠이 늘었다. 조용한 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집. 아니, 아무도 없는 집. 혼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쓴 글을 지우고, 또 다시 쓰고, 또 다시 지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백지 앞에 앉아있다. 불안하지는 않은데, 이제 조금은 두렵다. 어쨌거나 그 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불안함을 제거해준다. 그러나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사실이 날 두렵게 만든다. 시간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 허황되고 미숙했었지만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20대 때의 그 무언가가 이젠 현실이라는 옷을 입고 실체가 되어 나와 동거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나의 40대. 그래도 나의 시선이 조금은 타자를 향하고, 위나 앞이 아닌 조금은 아래와 옆을 향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동지의 발견.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겐 동지일 거라는,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이 흡족함에 가슴이 설렌다. 20대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 함께 하는 세상. 두려워 할 필요 없다. 함께 가는 동지들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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