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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강남순 저, ‘젠더와 종교’를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23. 09:58

페미니즘 렌즈를 통한 종교의 탈구축.

강남순 저, ‘젠더와 종교 (부제: 페미니즘을 통한 종교의 재구성)’를 읽고.

불행하게도 종교는 역사적으로 해방적 기능만이 아닌 억압적 기능도 충실히 해왔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종교의 두 얼굴이다. 정의롭고 공의롭게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는 데 앞장서야 할 종교가 불의와 분쟁, 전쟁과 분열이라는 굵직굵직한 쓴 열매를 맺어왔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인간의 뼈아픈 역사다. 이를 잠시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간 안에 깊숙이 내재된 어두운 본성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리 개인이 도덕적이라 해도 집단을 이루게 되면 비도덕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인간의 민낯을 날카롭게 발려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알다시피 도덕적이지 못하다. 그러므로 니버의 통찰은, 도덕적 개인이 집단을 이뤘기 때문에 비도덕적인 모습을 띤다고 이해할 게 아니라, 애초부터 비도덕적인 인간이기에 더욱 비도덕적인 집단을 이룬다고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젠더’라는 세부적인 사항을 추가하고 싶다. 물론, 인간을 개인과 집단으로 나누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와 같은, 개인 윤리 차원에서는 드러나지도 않을 뿐더러 간파할 수도 없는, 요소를 발견하게 해주어 인간에 대한 정치철학적 사유를 보다 넓고 깊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인간을 단순히 머릿수로 나누는 방법에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인간을 이해하기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거대 담론과도 같이 일괄적으로 어떤 것들을 큰 덩어리로 나누고 규정해버리는 모더니즘적인 생각은 인식론적 폭력이며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개인의 개성과 각 요소의 특성에 귀 기울이며, 작지만 다양한 내러티브들의 향연을 반기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에도 맞을 것이다.

개인은 모두 같지 않다. 여성이 있고 남성이 있다. 아이가 있고 어른이 있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인지,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인지, 아니면 성 비율이 비슷하게 맞춰진 집단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분명 다르다. 물론 니버의 말은 성차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에 대한 통찰이라고 해석해야 하겠지만, 그 통찰을 각자의 컨텍스트에 맞춰 이해하는 우리들도 과연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다시 말해, 해석하는 입장에서 우리들이 떠올리는 개인과 집단이란, 과연 여성이나 그외 소수자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개념일까. 아니면, 혹시 무의식적으로, 아주 당연하다는 듯 기득권의 어른 남성을 생각해버린건 아닐까. 마치 그들만이 인간의 표준인 것마냥. 그외 나머지는 일괄적으로 처리되는 부수적인 존재인 것마냥.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인식체계는 가부장적일 수밖에 없다. 여남의 생물학적인 차이가 인식론적 체계까지 결정짓진 않는다. 그것은 후천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열매다. 특히 유교 문화가 깊숙이 침투해있는 한국사회는 여남 모두 가부장제의 직간접적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종교는 어떠한가. 시스템을 갖춘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더라도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과도 같이 인간에겐 무언가 저 너머를 갈망하는 본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종교는 유형무형의 모습으로 편재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인간만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다른 생명체는 소멸 (perish)하는 반면, 인간은 죽는다고 (die). 또한 다른 동물들이 인간처럼 무언가를 섬기거나 기리는 행위를 한다는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고로, 종교는 인간의 전유물이며, 여기엔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이 그대로 녹아있을 수밖에 없다. 종교는 개인이 아닌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집단은 개인에 비해 더욱 비도덕적이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정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종교가 도덕적일 수만은 없음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인 인식체계가 짙게 깔린 종교의 중심부에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그대로 녹아있기에, 자본과 권력을 휘두르는 계층에 속한 사람들 (주로 기득권의 어른 남성, 인종이 추가되면 백인이라는 항목까지)이 아니라면 언제나 무시되거나 희생되어온 역사를 가진다. 하나의 집단 안에 하나의 종교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희생되는 층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듯 종교는 비도덕적인 양상을 띨 수밖에 없으며, 이는 종교가 해방과 억압이라는 두 가지 상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종교의 비도덕성 이면에 깃든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젠더’라는 렌즈로 인간의 ‘이기심’을 바라보면 더욱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통해 보다 깊고 넓은 인간의 본성을 사유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사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인지할 수 있을 뿐더러 더욱 좁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키워드가 바로 페미니즘이며, 이러한 시각이 반영된 신학이 바로 페미니스트 신학이다.

1994년, 저자인 강남순 교수가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로 쓴 첫 책, ‘현대여성신학’이 24년이 지난 2018년 작년에 개정판으로 새옷을 입었다. 사반세기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경종을 울리고 그들이 새로움까지 느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이 책이 선포했던 예언자적인 메시지와 시대를 꿰뚫어본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한국사회의 안타까운 현주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한국사회는 여성으로 대표되는 소수자들이 그때보다 더 살만한 곳이 되었는가. 한국 기독교는 혹시 그들에게 해방이 아닌 억압의 메신저로 더욱 자리매김하지 않았는가.

물론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아직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알러지 반응을 보이거나 그저 여성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운동 정도로 폄하하는 인식이 적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길 바란다. 뿌리깊이 각인된 사상이 단번에 전복되거나 변혁되긴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에게 그러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깨닫고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으로 대표되는 모든 소수자들을 바라보는 눈이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은 더 따뜻해졌으면 한다.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데 이렇게도 돌고 돌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는 마음 아플 뿐이다.

이 책의 부제는 ‘페미니즘을 통한 종교의 재구성’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종교가 그 담론과 실천에서 젠더 감수성과 젠더 정의에 대한 예민성을 확산함으로써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종교와 사회로 변화하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종교의 실패,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의 실패를 기본전제로 한다. 저자는 그 실패는 ‘지적인 실패’가 아니라 ‘실천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세계의 비인간화와 황폐화를 개혁하기 위한 실천의 실패라는 것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현대사회의 가부장제를 심판하고 회개와 변화를 촉구하는 예언자적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신학하기, 즉 페미니스트 신학으로 기독교 안에 뿌리 박혀있는, 소수자를 포함한 타자를 이분법으로 분리하여 객체로 만들어 제한하고 왜곡하며 억압하는 쓴 뿌리들을 뽑아내길 바란다. 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페미니스트 신학이 할 수 있다고 보며, 페미니스트 신학이 제시하는 관점이 모든 신학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변혁을 주장하는 저자는 기존의 가부장적인 색채가 강한 전제와 구조를 단순히 부수어 없애자는 (destruction)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정의와 공의, 사랑과 평화가 임하는 하나님나라가 더욱 가능하도록 기존의 전제와 구조를 탈구축 (deconstruction)하자는 것이다. 파괴가 목적이 아니다. 제대로 짓자는 것이다. 깊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인 것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페미니스트 신학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강남순의 글은 화내지 않는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는다. 차분한 일대일 과외선생처럼 친절한 개념 정리는 물론 여성학과 페미니즘의 역사와 유형, 페미니스트 신학이 다루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소개까지 그 숲을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저자의 페미니즘 3부작 시리즈의 첫 책으로 나는 이 책을 자신있게 권한다.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신학의 숲을 보았다면, 페미니즘과 기독교가 양립 가능한지를 핵심 질문으로 묻는 그 다음 책인 ‘페미니즘과 기독교’로 넘어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깊게 고찰해보며 기독교의 기본 정신과 그것이 지향하는 세계관에 대해서도 고찰해보는 기회를 삼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 다음엔 마지막 책으로 ‘21세기 페미니스트 신학’을 접한다면, 19-20세기에 출현했던 페미니즘이 21세기 요즈음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며 신학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더 자세하게 페미니스트 신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가부장제적 남성주의의 관점으로부터 평등주의적 관점으로의 변혁이 페미니스트 신학을 통하여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강남순 읽기
1. 용서에 대하여: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1397245280320250
2. 페미니즘과 기독교: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1915133151864791
3. 배움에 관하여: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352524668125635
4. 정의를 위하여: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420175528027215
5. 매니큐어 하는 남자: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570770352967731
6. 젠더와 종교: https://www.facebook.com/youngwoong.kim.50/posts/2781229218588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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