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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애환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1. 27. 08:23

애환.

미국에 산 지 8년이 넘었다. 우연찮게도 여태껏 한국인이 전혀 없는 학과에만 배치가 되어 직장에서는 영어로만 소통해야 했다.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긍정적인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동안에는 언제나 일련의 발전을 이루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내겐 집중하지 않으면 소음에 불과할 정도로 잘 들리지 않는 언어이지만, 그 동안의 반강제적인 훈련은 내가 집중만 하면 내 분야에서는 물론 기본적인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영어도 대부분 들리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외국인들과 영어로 소통을 하다 보면, 오늘처럼 진이 다 빠질 때가 있다. 이런 순간들은 불쑥불쑥 예고도 없이 찾아와 그날의 기분을 한없이 울적하게 만든다. 한국에 있을 땐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다. 디아스포라의 애환이랄까, 나그네의 설움이랄까. 갑자기 소외되는 듯한 이런 기분은 좀처럼 적응이 안 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감정도 가라앉으면 나는 혼자 조용히 복기를 해본다. 그러면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없이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 문화라는 결론에 이른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만남에서 벌어진 충돌이라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긴 충돌인 것이다. 그럴 때마다 더욱 좌절스러운 것은, 문제의 핵심은 그저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언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언어 이전에 각인된 선입견이라는 녀석 때문이라는 점이다. 물론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춘다면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허나, 문제해결은 어림도 없다. 절망은 아무리 노력해도 될 것 같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내것이 된다.

소수자들이 느끼는 슬픔과 고통도 이와 비슷하진 않을까. 개인이 아닌 집단, 소수가 아닌 다수, 그곳에 모여서 비대해진 권력, 그 권력에 기생하며 보호받는 이기심. 이런 것들은 분명 언어적 문제를 훌쩍 뛰어넘는다. 잘못되거나 틀린 게 아닌데, 그리고 미숙한 것도 아닌데, 마치 그렇게 인정하고 넘어가야 단체 생활을 유연하게 잘하는 사람처럼 인정이라도 받게 되는 이런 상황이 참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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