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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이기심: 주기만 하려는 마음의 뒷면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1. 2. 04:13

이기심: 주기만 하려는 마음의 뒷면.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미래를 좀 더 확실하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미래의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가 있다. 살면서 언젠가는 맞이하게 되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전환. 우리가 성숙이라 부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첫 단추는 겸손함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볼 줄 아는 눈. 낮은 자의 눈은 굴절되지 않는다. 불확실한 미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의 한계를 부끄럼 없이 인정할 줄 아는 자세. 성숙함은 겸손함을 기반으로 한다.

내가 메고 있는 짐을 타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며 절대 나누지 않고 홀로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 타자를 향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흔히 우린 그렇게 생각하며, 가끔은 한없는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이 이타심의 절정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면에서 이타심이 아닌 이기심을 본다. 성숙하지 못한 자의 이타심은 이기심으로 나타날 때가 많다. 나누지 않는 삶에는 언제나 ‘나’만 존재한다. 타자는 없다. 이웃도 없다. 고독한 도덕 선생이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함께 가기 위해서는 짐도 나누어야 한다. 서로를 의지하며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할 문제가 아니다. 겸손함을 거쳐낸 성숙함은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이웃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웃의 손길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웃은 나의 도움을 받을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 동등한 관계를 무시한 채, 도움 줄 땐 이웃에게 너그럽고 친절하다가, 도움 받을 일이 생겼을 땐 이웃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잊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끙끙 앓는 고독자의 마음은 과연 무엇으로 가득차 있을까. 나일까, 타자일까. 타자를 위한답시고 결국 자신을 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사람이 겸손하고 성숙한지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도움을 줄 때뿐만이 아니라 도움을 받게 될 상황도 지켜보라. 그 안에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겸손함과 성숙함은 늘 멋진 선물을 준비해 선사해주는 삶만이 아닌 무거운 짐까지도 나누고 서로를 의지할 줄 아는 삶에 있다. 함께 사는 세상은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지, 주기만 하는 세상도 받기만 하는 세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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