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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경계에 서서 묵상하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1. 2. 04:16

경계에 서서 묵상하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 이상주의도 현실주의도 아닌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고자 애쓰는 과정. 삶의 여정.

이상에 치우치면 위험한 행복감이나 증오감에 빠질 우려가 있다. 스스로가 만든 관념적인 해석과 적용이 자기기만을 거쳐 대상을 낭만화하거나 악마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실에 치우치면 허망함의 늪에 빠져, 희망은 환상이라거나 마약과도 같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며 마치 인생 다 산 사람처럼 행세할 우려가 있다. 스스로 쌓아온 경험들이 진리가 되어 마치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사람처럼 되기 쉽기 때문이다.

주로 현실주의자들보다는 이상주의자들이 행복하고 건전하게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이란 어쩌면 무언가를 ‘앎’에서 온다기보다는 무언가를 ‘모름’으로부터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알아가려는 인간. 그러면서 점점 어린아이의 웃음을 잃어버리는 인간. 성숙한 지혜로움은 이 둘을 모두 소화하고 체득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많이 알지만 어린아이의 웃음을 간직한 사람. 어린아이를 넘어서 어른이 되고, 다시 어른을 넘어서야 지혜로움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어른에만 머문다면 기껏해야 꼰대가 될 뿐이지 않을까.

마찬가지다. 보수에서 진보로, 인생의 어느 변곡점을 만나 반동적인 힘으로 튕겨나간 자의 눈은 지혜로울 수 없다고 본다. 숱한 도전과 기회를 차치하고 보수에 머무르겠다고 선언한 그 고집불통에도 지혜를 찾긴 힘들 것이다.

살다보면 ‘강을 건너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가 있다. 그 강은 한 번 건너면 어지간해서는 되돌아갈 수 없다.

예전에는 그 강을 사이에 두고 두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더 커다란 세계 안에 위치한 하나의 강이라고 생각한다.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논리가 인간의 성숙한 지혜로움의 여정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며 날선 시선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눈의 적합성을 생각해본다. 옳음과 그름으로, 진리와 비진리로, 생명과 죽음으로...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을 일상화하여 살아가는 인식론적 폭력과, 무턱대고 나도 맞고 너도 맞다는 상대주의의 경계에 서서 나는 오늘도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조심스레 살펴본다. 묵상은 자기 안에 침잠하는 게 아니다. 자기를 벗어나고 넘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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