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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성숙: 다른 렌즈로 낯설게 바라보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1. 2. 04:15

성숙: 다른 렌즈로 낯설게 바라보기.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대전에 도착했던 첫 날. 저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건 고층 아파트들의 거대한 숲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고층 빌딩 숲이 있는 곳은 보통 다운타운에 국한되거든요. 물론 땅 넓이 차이 때문이겠지만, 7년 만에 저의 눈 앞에 펼쳐진 결과물들은 충분히 신선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매일 밤잠을 자고 일상을 살아가는구나 싶었습니다.

거리로는 가까운 거리임에도 운전해서 가니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좁은 땅 덩어리에 차는 많고 신호등과 신호등의 거리도 짧아서 멍하니 차 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운전할 때 신경이 예민해질 기회가 더 많을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주차할 때도 장관이었습니다. 주차선이 그려져있지 않은 곳에 아무렇게나 주차해있는 차도 많았고, 심지어 한 쪽 길을 주차장으로 만들어버려 양방향 통행인데도 한 쪽 길만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도 차가 만원이라 통행로에 군데군데 주차해있는 차들이 많아 주차할 때나 주차된 차를 끌고 나갈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산다면 왠만해선 차를 안 끌고 다닐 수 있도록 상황을 최대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더군요.

하나의 렌즈로만 보다가 다른 렌즈로 똑같은 것들을 보게 되었을 때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됩니다. 익숙해져 있는 것들과 옳은 것들의 차이. 또한, 낯선 것들과 틀린 것들의 차이. 이 둘을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성숙함을 말하는 하나의 지표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익숙해져 있던 것들에서 수정할 부분을 볼 줄 아는 눈은 낯섦을 경험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불편한 순간을 맞이하고 자신의 모습과 자신 주위의 환경을 한 걸음 멀리 떨어져 바라볼 줄 아는 객관화 작업이 필수이지 않을까요.

익숙한 것들이 항상 옳은 건 아닙니다. 낯선 것들이 언제나 틀린 것도 아닙니다. 이분법적인 인식론적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다양성에 노출되며 존중하고 배려하는 작업은 그것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가능한 어릴 적에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구요. 물론 다른 렌즈를 경험해봤다고 해서 마치 우월한 입지에 선 것처럼 여기게 되는 어리석음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12/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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