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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겸손을 가장한 태만과 기만과 교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4. 17. 12:57

겸손을 가장한 태만과 기만과 교만.

“저는 ~~~ 라서 ~~~ 는 잘 몰라요 (못해요).”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다. 언뜻 겸손처럼 들린다. 하지만 난 그 뒤에 가려진 태만과 기만과 교만을 본다. 대표적인 예를 두 가지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저는 문과생 (혹은 공대생)이라서 그런 거 도통 이해가 안 가요.”

물론 이 문장만으로 태만, 기만, 교만을 읽어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의 이후 행동을 살펴보면 충분히 가능해진다. 당연히 문과생과 공대생의 학습 방법과 사고 방식은 다를 것이다. 공대생인 내가 생물학 논문을 읽을 때 느끼는 쾌감을 문과생은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고 이해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문과생이 펼쳐나가는 이론과 통계, 그리고 추론과 예상 등의 글을 공대생이 읽을 땐, 가끔은 왜 저런 걸 저렇게 심각하게 연구할까 하는 궁금증이 들 정도로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에 공감하기가 힘들다. 공대생인 내가 철학이나 신학, 혹은 인문학 서적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 그들의 논리에 함께 하기 힘든 이유도 아마 같을 것이다. 실제로 철학/신학/인문학 등의 이슈로 문과생과 공대생이 대화를 해나가면, 서로가 중점적으로 여기는 부분이나 그 이유, 혹은 그 배경에 깔린 논리 전개에 대해서 충분히 교감하기 힘들다. 왜 저런 생각을 할까, 내지는 왜 뜬금없이 저런 걸 묻지? 하는 생각에 자주 처하게 된다. 그러다가 터져나오는 결론 아닌 결론이 바로 자신의 배경 (문과생이냐 공대생이냐)을 탓하는 것이다.

(2) “저는 기계치라서 이런 첨단 기술 장비는 겁이 나고 잘 다루지 못해요.”

역시 이 문장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면 지나친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말을 한 사람의 이후 행동을 살펴보면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해진다. 아무래도 구세대가 신세대보다는 IT에 친숙하지 못하다. 흑백 텔레비전을 실제로 보던 세대가 스마트폰의 여러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레 등장하는 결론이 자신이 구세대임을 탓하거나, 기계치라는, 어쩌면 겸손하게 보이는 자기비하적인 단어를 사용한 변명이다.

위의 두 가지 변명을 한 사람의 이후 행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과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

배우려는 사람은 자신이 문과생이든 공대생이든 혹은 구세대든 기계치든 상관없이, 자신이 잘 모르고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하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여 조금씩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제거해가는 자세를 보인다. 변명에 그치지 않고 변명을 넘어서는 것이다.

반면,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자신이 내뱉은 변명 뒤에 숨는다. 충분히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그러기를 거부한다. 태만이다.

그래놓고 또 다시 자신이 불편함을 느끼는 주제에 기웃거리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자주 기웃거리는 행동 때문에 이 사람을 잘 모르는 타자의 눈에는 마치 이 사람이 배움의 열이 뜨겁다고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사람은 배울 마음이 없다. 배울만한 게 정작 주어지면 또 다시 변명을 하고 내뺄 것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기만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은 결국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타 영역에 기웃거리는 기만적인 행동을 하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자세를 고수하는 건 교만이라는 단어 말고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 조용히 배우자. 변명? 충분히 괜찮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지 말자. 넘어서자. 겸손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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