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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기.
일의 시작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단편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의 끝은 그러한 기발함이나 순발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대신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끈기와 성실함이다. 심리적인 부분도 일의 시작보다는 끝을 준비할 때 더 크고 깊다. 시작한 일을 끝내는 것은 지난한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비로소 통과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쨌거나 시작된 인생의 여러 다양한 일들을 끝내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마흔을 넘기면서 점점 확고해지는 생각은, 톡톡 튀는 재치보다는 묵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더욱 필요하고 가치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재기발랄함보다는 진중한 우직함에 신뢰가 더 간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오면서 한때는 전반전에서 다하지 못한 일들을 이루려고 했었다. 나이가 많은 건 그저 일의 효율을 떨어뜨릴 뿐이라 여겼다. 그래서 시간을 좀 더 들이고 노력을 좀 더 하면 미완성의 일들을 완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날이 생각이 바뀌어간다. 후반전과 전반전은 해야 할 일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 그저 노화로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질적인 차이가 둘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전에서 이루지 못한 일들에 미련을 가지며 후반전에서 그걸 메우려 하는 인생은 미련과 탐욕으로 채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아무래도 인생의 후반전은 전반전의 연장이 아니다. 후반전에 걸맞는 일이 있다고 본다. 그 일을 찾아내서 지속해나가는 것이 어쩌면 눈이 깊은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혜로움도, 오늘을 살아내는 것도 같은 방향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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