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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깊이.
물리적인 관점에선 시간은 깊이가 없어야 맞다.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쌓인다. 깊이를 가진다. 이때 그 깊이에 대한 이해는 물리의 영역을 벗어나 철학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시간은 지나가도 그 지나간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곧 기억이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이 쌓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행위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깊이는 우리들의 바탕이 되고 배경이 된다. 현재는 과거를 딛고 있으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딛고 있다. 기억한다는 것은 시간의 깊이가 만든 우물로부터 길어오른 물을 마시는 행위다. 이때 과거는 현재가 되고 나는 시간을 초월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매개물을 통하여 그 정체를 드러낸다. 매개물을 통과한다는 건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하는 시간은 이미 해석된 시간이다. 우린 날 것 그대로의, 즉 해석되지 않은 시간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셈이다. 만약 그 시간을 한 발치 떨어져서라도 응시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시간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시간이 깊이를 가지지 않는다면, 5분간 태어남과 죽음에 이르는 인생 전체를 파노라마로 짧게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면서 우린 아무런 감동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의 깊이가 없다면 우린 타자를 공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간의 깊이가 존재하기에, 그 깊은 우물 안에서 물을 길어마시기에 우린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타자의 삶을 보면서 공감을 할 수 있고 가슴 아파할 수 있다. 그 우물은 곧 우리네 인간사가 모두 담긴 시간의 깊이이기 때문이다.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 기억한다는 것. 그리고 공감한다는 것. 시간의 깊이를 생각하다보니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우린 모두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우물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종종 그 우물에서 조용히 물을 길어 마시는 사람. 그리고 타자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아는 사람. 시간의 깊이 위에서 겸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일 테니까.
*신형철의 강연을 들으며 다시금 생각하게 된 시간에 대한 생각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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