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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책, 그리고 사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6. 17. 06:36

책, 그리고 사람.

알라딘 US 무료배송 시스템이 사라졌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50달러 이상 구매시 (한 때는 90달러 이상인 적도 있었다) 무료배송이었는데, 며칠 전 읽고 싶은 책이 또 생겨 구매하려다가 결제시 총 결제금액에 배송비가 포함되어버린 것을 발견했다. 그것도 12달러 씩이나!

엘에이 근처에 사는 이점은, 한국에서 책을 싣고 들어오는 비행기가 내리는 곳이 바로 엘에이여서 별다른 배송비가 들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월요일에 주문하면 보통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주문했던 책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12달러를 더 내야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일단 난 구매를 포기해버렸다. 좀 기다리면 다시 무료배송을 실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서.

읽고 싶은 책이 왜 이리 많은지, 난 참 욕심이 많은 것 같다. 어차피 평생 다 읽어낼 수 없을 텐데도 책들을 보면 항상 미련이 남는다. 주어진 시간과 주어진 체력에 철저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행위 중 하나가 독서다. 나도 작은 글씨 볼 때 초점이 예전같지 않고, 나도 모르게 구부리게 되는 목으로 인한 뭉침현상 때문에 스트레칭을 자주 해줘야 집중해서 책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책을 계속 읽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안 읽어도 된다고 쉽게 말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난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꼭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꼰대화의 속도를 증진시킬 수밖에 없으며, 자기 안에 갇혀 유아적인 어른이 되어 민폐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깨어지지 않는다면, 이성으로 인한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 진보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기만 아는 탐욕적인 실체를 거침없이 드러내거나 혹은 교묘하게 숨길 줄 아는 능력만을 키우며 헛되고 거짓된 어른으로 늙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는 늙기 싫으며, 적어도 그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싶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자기에게서 벗어나 타자를 향하는 삶을 살아내는 동시에,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그 관계의 소중함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누리는 것.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나는 이런 삶에서 하나님나라가 있다고 믿기도 한다.

책 읽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지식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제외다. 자신의 허영을 채우고자 책을 읽는 사람도 제외다. 목적이 자기 증진에만 머문다면 모두 사양이다. 머리에 갇힌 지식은 배설물과 다름 없다.

그렇다고 난 마냥 순하고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인격적으로 손색이 없는 사람 중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의외로 많이 존재하는데, 사실 그런 부류와 소통하기란 나로선 쉽지 않다. 단순하고 소박하며 청렴결백한데 책을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저 멀리서 빛나는 등불 정도로 여긴다. 소통 없어도 그저 옆에서 빛나는 존재. 하지만 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 (혹은 받을 줄 모르는) 존재. 이런 부류도 난 친구로선 사양이다. 나는 여전히 소통을 원하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줄 줄도 알고 받을 줄도 아는, 쌍방의 교류로 인해 돈독해져가는 관계에서 난 소중한 가치를 찾는다. 그리고 그 중요한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책이다.

책과 사람. 사람이 책을 쓰지만 책이 사람을 만들어간다. 책은 단지 information에 그치지 않는다. 책은 사람을 형성 (formation)해간다. 책을 읽는 재미를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들기 직전에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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