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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의 인간다움.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다보면 지속을 원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시스템 구축을 고려하고 실행에 옮겼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체계적인 조직화 과정이 그 의미를 확산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거라 여기는 긍정적인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은 시스템화하지 않고 오히려 주먹구구식으로 존재할 때만이 그 참된 의미를 지속할 수 있는 것 같다. 대량생산이 모든 걸 구제해주진 않는다. 상품화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혁명 뒤에는 언제나 잊혀지고 묻힌, 혹은 부려지고 짓밟힌 소소한 행복이 있는 법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하게 되면, 종종 이것 해서 뭐하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다. 마치 손에 든 작은 계란으로 저 거대한 바위를 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동시에 자기 존재의 사소함을 느끼며 스스로 의미를 축소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주먹구구식의 그 사소로움 안에는 자유가 있다. 그 자유가 사라지면 의미도 상실되는 것들이 많다. 상품화 과정은 자유의 자리를 효율로 대체한다. 그리곤 의미 추구가 아닌 확산만이 목표가 된다. 그러나 아주 많은 경우 그 확산은 의미를 상실한 껍데기의 증폭일 뿐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주먹구구식의 자유는 의미를 지속시키며, 비록 소수이더라도 그 일에 참여하는 모든 이가 만족을 누릴 수 있었지만, 상품화의 효율성은 모든 유익을 자본가가 가져갈 뿐이다. 자유로우며 소규모로 수평적인 관계는 시스템화 과정 덕분에 수직관계로 변모한다. 이런 위계질서의 생성은 의미 상실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다가 상품화의 결과가 맺는 불어난 자본이 내는 화려함 이면에서 나는 자유와 의미의 상실,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의 상실을 본다.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주먹구구식의 이런저런 일들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열악해 보이는 것들 이면에 충만한 의미와 자유를 새삼 맛본다. 인간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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