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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관조와 일상 (aka 멍 때리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0. 7. 25. 16:52

관조와 일상 (aka 멍 때리기).


관조적인 삶을 동경하는 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내가 있어야 할 곳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가끔 여행을 떠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책이나 영화 등의 도움을 받아 상상력을 동원하여 몸의 한 부분처럼 착 달라붙어있던 세상과 가능한 떨어지려고 노력한다. 물론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패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다면 나는 세상의 무게에 짓눌려 나 자신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황야, 광야, 도피처,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다. 혼자 있는 시공간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에 꼭 필요하다. 지혜는 어쩌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 멈출 줄 아는 것에, 그리고 가끔 스스로를 고립시킬 줄 아는 용기와 결단과 실천에 있을지도 모른다. 쉼은 숨을 제대로 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멈추지 않는 심장은 사람에게 삶을 허락해 주지만, 사람의 삶은 심장이 아니기 때문에 멈춤이 필요하다. 


때로는 쉼이 뜻밖의 선물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쉬지 않고 쳇바퀴 돌릴 땐 전혀 떠오르지 않던 영감이 별안간 쉴 때 떠올라 전율을 느끼던 기억, 아마 이런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급기야 쉼이 이용당하는 상황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쉼의 의미는 더 앞으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고급지고 멋져보이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슬픈 일이다. 난 이런 흐름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


쉼의 도구화는 숨통을 조인다.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쉼은 쉼이 아니다. 쉼이 뜻밖의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의도한 결과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과연 그 사람이 그 시간에 쉼을 얻었을까. 아니면 장소와 형식만 다를뿐 계속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일까.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의 답은 결과론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선택한 쉼에서 어떤 만족할만한 성과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아무런 영감 없이 혹은 아무런 성과 없이 그냥 쉰 거라면 이 사람에게 그 시간은 고작 시간을 축낸 거나 다름 없고 낭비라고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런 사람의 인생은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마찬가지 논리로, 항상 혼자 있음이 함께 있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그저 둘 다 필요할 뿐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한 도구가 되지 않는다. 둘 간의 밸런스가 맞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둘 중 어느 한 쪽에 치우쳐 다른 한 쪽을 비난하거나 악마화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서 소위 출세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이 쓴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훑어보면, 목적이 비슷한 사람들의 눈에는 성공비법으로 보일 것들이 목적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글이 책에서 제안하거나 주장하는 방법들은 그저 모든 시간의 수단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짬 시간을 이용하라,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하라, 화장실에서 응가하는 시간에는 이런저런 걸 하라,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요런 걸 해라, 등등. 가만히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도대체 이 사람은 성공하기 위한 인생 외에는 다 쓰레기로 취급하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여기에 맞서 다른 제안을 한 번 해볼까. 그냥 멍 때리기가 의외로 쉼을 가져다준다고 말이다. 이런저런 대기 시간에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읽거나 본 지나치게 넘쳐나는 정보들을 과연 잘 처리하고 있을까. 요즈음엔 기다릴 때 그저 멍 때리거나 주위 환경 혹은 사람들을 보며 잡다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다들 뭐가 그리 아까운지 정보에 정보를, 재미에 재미를 더하기에 급급하다. 그럼 이들은 그렇게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정보들에 대해서 만족스러울까. 유익함을 만끽했을까. 조금 더 똑똑해졌을까. 과연 행복할까.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으로 대중 속에 묻혀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들을 자주 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환기를 주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눈을 들어 시선을 멀리 하니 아름다운 산과 구름, 그리고 드높은 하늘이 보인다. 마음은 정보 취득할 때보다 훨씬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자주, 더 자주 이런 순간들을 누려야지. 더 많이 멍때리며 일부러 심심함을 즐겨야지. 그런 시간도 나라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과정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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