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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홀가분함: 바쁨 속의 여유, 카르페디엠!
90도 가까이 올랐던 기온이 밤이 되면서 70도 이하로 떨어졌다. 딱 자기 좋은 온도다. 그러나 이 온도는 또한 무얼 해도 좋은 온도이기도 하다. 과연 일찍 잠을 청할 것인가. 아니면, 평소에 좋아하지만 요즘 좀처럼 여유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읽고 쓰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맛볼 것인가. 시간의 제한됨을 느끼며 나는 이밤 또 이렇게 우물쭈물댄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철학 독서모임에서 오늘 발제를 담당했다. 하이데거와 니체를 비교하는 내용이었는데, 하이데거도 모르고 니체도 모르는 나로선, 게다가 서양 형이상학의 주요 흐름을 좀 꿰고 있어야 그들의 비판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었다. 다행히 철학 선배들의 배려와 격려를 도움 삼아 그런대로 발제를 했지만, 여전히 나는 내 입을 통해 내뱉아졌던 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조금 감을 잡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책임도 나에게 공부를 조금이라도 깊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선배들의 사랑이다), 이것저것 자료들을 듣고 보면서 내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저 나는 감을 조금 잡았다는 말밖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과정도 철학함의 일환이라는 생각이 들라치면, 나는 한 명의 작은 철학자로서 삶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서, 절대성과 상대성에 대해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들 이면에 흐르는 본질이랄까 존재랄까 하는 개념들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맛보고 또 그것을 내 삶으로 끌어들여와 생각해보며 나는 그리 틀린 길을 가고 있진 않다는 적잖은 위로를 받게 된다.
나 같은 실험생물학자의 논문은 그저 책상 앞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하는 작업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보다는 그 동안 어떤 생명현상을 우연이든 필연이든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메커니즘을 밝히고, 또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이를테면 현재까지 밝혀진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의 간격을 얼마나 내 연구가 메우고 또 업그레이드시켰는지를 조목조목 실험결과를 분석하여 적어야 한다. 쓰는 행위보다는 결과 분석에 소모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주말 내내 진행하던 분석을 마치고 일요일밤 늦은 시간에 보스에게 보냈더니, 30분 이내에 바로 답이 왔다. “Very beautiful! ….”
철학 모임에서의 발제, 실험결과 분석, 이렇게 두 가지 모두 어쨌거나 무사히 넘겼다. 두 가지가 지난 일주일 동안 은근히 마음에 부담이 되었었나보다.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한 걸 보니 말이다.
2주 자가격리가 끝나고 아내는 곧장 일자리를 구했다. 숙소도 무료로 제공하는 병원에서 한 동안 일하게 된다. 미국에서 애써 얻은 내분비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한국에서 처음 써먹게 될 줄은 아마 당사자인 아내도 몰랐을 것이다.
읽다가 중단되었던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헤세와 도스토예프스키에 이어 찾은 나의 고전문학여행의 세 번째 정류소로 카잔차키스를 선정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그 감동은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러나 이 ‘영혼의 자서전’은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허투루 써진 게 없고, 굉장히 깊다. 헤세와도, 도스토예프스키와도 다른 카잔차키스. 나의 문학성은 오늘도 조금씩 고양되어 간다. 이 여행 자체가 즐겁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그리고 두 번 다시 누릴 수 없는 축복일 것이다.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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