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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사람들의 교만.
상처 받은 사람들의 고질적인 실수는 그들이 타자로부터 배려 받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동안 친절하게 다가와, 비록 틀이 박히긴 했지만, 그래도 애정이 담긴, 간단한 말이라도 건네준 건 그들이 받은 상처 때문이지, 결코 그들의 원래 모습 때문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상처가 치유되고 나면, 모든 사람들은 그 위로의 행위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상처 받은 이후, 타자의 배려와 위로를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기적인 면이 많이 담겨있는 현상을 목격한다. 그들은 오로지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지 판단하고, 얼마나 지속적으로 그 행위를 해주는지 관찰한다. 어느새 남들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 역설적인 모습을 나는 또 하나의 자기중심성의 폐단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깨달은 바를 써대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공해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마음으론 결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꼰대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상처를 입든 입지 않든, 거만하든 거만하지 않든,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열등감과 오만함은 야누스의 두 얼굴과도 같다. 그 정체는 바로 교만. 둔갑의 귀재인 교만은 약자에게 가서는 열등감이 되고, 강자에게 가서는 오만함으로 발현된다. 약하다고 해서, 열등감에 빠져있다고 해서, 혹은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교만이 사라지진 않는다. 교만은 어떤 모습으로든 당신을 뚫고나와 발현되기를 애쓰는 그 무엇이다. 특히, 오랜 기간동안 상처 받은 사람은 그 상처를 훈장 삼아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을 남들로부터 어느 정도 보장받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보장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쉽게 알아채기 힘든 약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의 그 우울한 이기심에서 인간의 교만함을 더욱 깊게 통찰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 상처를 스스로 깊이 후벼파서 그 안에 갇히려고 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든 비합리적으로든, 망각으로든 위선으로든,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으로부터 해방받으려고 애쓴다. 상처 받은 사람들 중엔 자칫 그 후벼파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부류도 존재하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파괴는 자기파괴일 뿐이다. 거기에 치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파괴, 자기비하 등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교만을 향한다. 오만한 자들이 남들의 눈에 띄도록 화려하게 교만한 자들이라면, 자기파괴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자기 상처에 충만한 눈으로 타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자들은 홀로 쓸쓸하고 우울하게 교만한 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위로받는 상처는 일시적이어야 한다. 한계를 가지고 각자의 컨텍스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이 되겠다. 남들의 배려와 위로는 당신의 상처가 일시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 배려와 위로의 이면에는 얼른 당신이 그 자리에서 박차고 나와 오히려 남들에게 배려와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기원을 담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배려와 위로의 화살은 결코 어떤 한 사람에게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흘러야 한다. 자신이 종착점이 되어 계속 받아먹으면, 그건 마치 달콤한 설탕물과 같아서 당신은 어느새 미련한 비개덩어리의 간사하고 위선적인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람들의 공감? 그건 인간으로서 아주 기본적인 덕목이며, 상처 받은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그게 당신을 그 구렁텅이로부터 끄집어내주는 마지막 다리 역할을 하진 않는다. 결국 그 마지막 과정은 당신이 해야 한다. 마지막 다리가 당신이 믿는 신앙이든, 어떤 신념이든, 어쨌거나 그 다리를 홀로 건너는 행위는 그 어떤 사람도 대신 해줄 수가 없다. 잊지 마라. 당신에겐 자유의지가 주어졌음을. 결국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마지막 행위는 바로 당신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발성의 '자'는 남이 아닌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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