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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원하는 것 vs. 구할 것: 솔직한 기도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1. 13. 12:43

원하는 것 vs. 구할 것: 솔직한 기도란?


솔로몬의 기도는 마 6:33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세상의 부와 명예 같은 사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닌 분별력, 듣는 마음, 지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았던 것까지 더하여 주십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본문을 그릇 해석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한 마디로 기도 형식에 천착하는 부류죠. 마치 사적인 기도를 하지 않으면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여전히 본인이 원하는 건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욕망 (이를테면 부, 명예, 성공, 인기 등)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마음에도 없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입으로 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재밌죠. 아이러니하구요. 그런데, 마음 중심은 그대로이면서 기도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혹은 솔로몬이 했던 대로 하는 기도를 과연 하나님께서는 받으실까요? 


방점은 입으로 내뱉는 기도의 말을 바꾸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 중심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데 있습니다. 여전히 ‘모든’ 것에만 더 관심이 있으면서 그것을 얻기 위해 그 말을 하지 않는 건 그저 방식만 바꾼 것에 불과할 테니까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저는 솔직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저마다 다른 신앙의 깊이와 색깔을 갖고 있죠. 우리 중엔 하나님과의 교제를 오래 해온 사람도 있고, 오늘 처음 하나님을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중엔 갖은 환난을 다 통과하며 정금 같이 연단된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눈에 보이는 단적인 결과에 따라 이리저리 마음을 바꾸는 기회주의자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도는 여러 의미를 갖고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하나님과의 대화’ 입니다. 상대방이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린 그 대화의 진정성을 따지게 됩니다. 중심을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잘 속는 사람 앞에서도 말이죠. 하물며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지 않다면 그건 단지 거짓을 행한다는 잘못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지 않을까 합니다. 무언가를 받아내기 위한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 따위의 존재로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일지도 모르는 것이죠.


“정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달라고 기도하지마.” 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조언입니까. 차라리 사탕 먹고 싶어 사탕 달라는 아이가 낫습니다. 차라리 성공하게 해달라는 솔직한 기도가 낫다는 말입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어서 그런 것들을 계속 주 앞에서 아뢰게 된다면 언젠가는 자기 모습이 부끄러워질 날이 올 지도 모르니까요.


원하는 것이 바뀌면 구하는 것도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구하는 것은 그대로이지만 단지 그걸 말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그것을 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연극은 이제 우리 그만 하도록 해요. 기도를 어떻게 할까를 따지기 전에 내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따져보면 어떨까요.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차이가 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이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확인작업이 진짜 기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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