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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이성과 감성.
누군가가 싫어지기 시작할 땐 이유가 필요하다. 이유를 찾아내고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성이 십분 발휘될 때다. 반면, 누군가가 좋아지기 시작할 땐 사실상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이성은 언제나 한발 느리게 움직이며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단다. 나는 인간이 과연 이성적인 판단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지 궁금하다. 관계를 맺기 전에 이성이 작용하는지, 맺은 후에 작용하는지 묻는다.
마음에 잘 맞는 사람도 시간이 지날수록 서먹해질 때가 있다. 반대로, 별 관심 없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영역 안으로 불쑥 들어올 때도 있다. 나는 이러한 관계의 시작과 유지, 그리고 서먹해짐과 마무리까지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해석은 사건 이후에 진행되는 법이다. 이성은 해석의 키다.
이런 면에서 보면, 좋았던 누군가가 싫어지기 시작할 때 어떤 이유가 필요한 것은 본능적으로 자기모순의 위험을 느끼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도 좋았다 싫었다 하는 모습이 못마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순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성과 논리로 가득한 명제적인 말이나 글에 대한 나의 신뢰는 점점 바닥을 향한다. 인간이 개입되지 않은 과학이나 수학 등의 분야라면 모를까, 인간관계에 대해서 어떤 법칙을 세운다는 건 정말 웃긴 일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본성을 잘 모르는 사람, 혹은 사회경험이 부족한 사람들 (이를테면 어린아이들)이나 신봉하고 또 그것을 자랑처럼 여기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마치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동그라미 시간표를 짜서 자신을 거기에 가두는 것처럼 말이다.
반지성적이지만 않으면 되지 않나 싶다. 누군가가 좋아지고 싫어지는 데엔 어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누가 들어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냥 좋아지고 싫어지는 것이다. 이성은 그걸 해석하기에 바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게 인간의 이율배반적인, 모순된, 종종 납득할 수 없는 본성에 가까운 모습들이 아닌가 싶다. 인간에 대한 기대가 점점 줄어든다. 그래도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제발 멀어지는 사람들을 향해 조소를 짓지 말아야지, 나를 높이고 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아냥대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다. 좀 더 지혜로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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