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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비밀, 그리고 인간의 탐욕.

움베르트 에코 저, ‘푸코의 진자’를 읽고.

비밀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드러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사람들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건다. 비밀은 그럴 만한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이 그런 힘을 갖기 위해 진실일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이 책에 따르면 그렇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비밀은 비밀스러운 힘을 가지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것, 아니 드러나지 않아야만 하는 것, 이를 위한 인간의 집요한 노력, 탐욕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열정이 어쩌면 비밀의 본질을 구성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목숨을 바쳐 지켜낸 비밀이 텅 비어있을지라도 말이다.

‘장미의 이름’을 계기로 강한 매력을 느껴 두 번째로 읽게 된 에코의 작품 ‘푸코의 진자’는 이러한 비밀의 비밀스러운 속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거기에 숨은 인간의 심리, 은밀하면서도 경박한 탐욕, 그리고 숙명적이고도 무력한 인간의 한계를 극적으로 파헤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주인공 카소봉과 벨보, 디오탈레비가 착수한 비밀 작업 ‘계획’이 서서히 진행되어가는 과정에서 그 이면에 흐르는 그들의 심리 변화를 무의식적으로 공감할 수 있음은 물론, 비밀이란 것이 어떻게 인간에게 정신적, 육체적 힘을 행사하는지 그 섬뜩한 현장을 또렷이 보게 될 것이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그들은 이내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고, 그들이 창조해낸 세계에 스스로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들이 창조한 이야기의 재료는 ‘아무거나’였고, 사실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쿨하게 보이면서 말만 되면 되는 것이었다. 재미난 건 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나중엔 그 바닥에서 비밀 중 비밀인 것처럼 자리매김하게 된다는 것이다.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해프닝을 목도하며 그냥 웃고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바로 저자의 목소리와 시선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에코가 이 작품을 통해, 비밀의 비밀스러운 속성이 의외로 얼마나 가벼울 수 있고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에 사로잡혀 비밀을 더 비밀스럽게 만들고자 안간힘을 쓰며, 그것이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켜내려고 발악을 하는 동시에, 그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자 혹은 극소수의 사람에 포함되고자 목숨까지 건다는, 이 웃지 못할 비극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실로 이 작품은 인간 탐욕의 폐부를 깊이 찔러 쪼개는 저자의 통찰이 번뜩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를 공감하기 위해서는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텍스트의 향연에서, 그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찬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잘 살아남아야 한다. 역사와 신비, 의도되지 않은 거짓과 의도된 거짓이 마구잡이로 섞여있어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내용, 이를테면 성전기사단, 장미십자단, 프리메이슨, 예수회, 연금술, 은비학, 악마 연구가들 등등의 음모론과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장난과 악의가 난잡하게 뒤섞인 숱한 이야기들, 과학의 영역까지 이야기가 확장되어 비밀을 가진 사람은 마치 푸코의 진자를 움직이게 하는 저 위의 부동점에 서서 지구 지자기류를 마음껏 조정하여 세계를 장악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황당무계한 음모론 같은 것들이 바로 이 텅 빈 비밀의 배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지만, 이 작품을 읽을 땐 텍스트라는 나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보다는 콘텍스트를 잡으려고, 즉 숲을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음모론 전공자 (?)가 아니라면 말이다.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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