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김영웅의책과일상

르 클레지오 저, ‘우연’을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7. 8. 12:42

행운 아닌 우연.

르 클레지오 저, ‘우연’을 읽고.

모게, 나시마, 아자르. 이름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작품. 지금까지 꽤 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이처럼 이국적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 소설은 없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적어도 단지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대신, 르 클레지오 특유의 색채라고 보는 게 더 적당할 것이다. 그가 만약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이 작품을 썼더라도 분명 똑같은 느낌을 충분히 표현해내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내가 읽은 책은 한국어 번역본 아닌가. 재창작이라고도 불리는 ‘번역’이라는 높은 관문을 통과하면서도 낯선 이국의 느낌을 뒤틀어짐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작품이라니! 나는 르 클레지오가 더 궁금해졌다. 언제 내 손에 들릴진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황금 물고기’와 ‘사막’이 책장에서 대기 중이다. 이 두 작품은 또 어떤 맛을 낼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영화감독으로서 세상 성공의 정점을 찍고 난 이후 점점 쇠락해가는 중년 남성, 쥐앙 모게. 무책임하게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어디론가 떠나길 갈망하던 소녀, 나시마. 그리고 이 둘을 이어준 ‘아자르 호’. 제목 ‘우연’은 프랑스어 ‘hasard’이고, ‘아자르 호’의 ‘아자르’는 행운이라는 의미를 지닌 스페인어 ‘azar’에서 따온 것인데, 이 두 단어는 같은 어원,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아자르’는 우연이기도 행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모게와 나시마의 만남도 우연이기도 행운이기도 했을까?

굳이 철학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의도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는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런 논의 없이도 충분히 매력을 지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낯설고도 매력적인 환상 소설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이 작품을 단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한다. 

모게의 극적인 인생의 내리막길에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든 나시마. 그녀가 소년으로 변장한 채 아자르 호에 몰래 숨어 모게와 같이 항해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녀에게 있어선 목숨 건 모험이었을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나날이 훨씬 많은 나이인데도 나시마는 그만큼 벌써 인생의 코너에 몰린 것처럼 절박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절박함이 우연을 만든 것일까. 아버지가 타고 간 커다란 배, 그가 떠나버린 바다, 그 원시적인 자연, 그리고 홀로 남겨진 채 망가져가는 엄마. 다행히 모게는 나시마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해서 짧지만 굵은 그들의 항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계획했던 게 아니기에, 이 두 사람 사이의 만남은 우연이라고 하는 게 옳다.

그러나 과연 그 만남이 행운이었을지에 대해선 작품을 다 읽은 나로서도 확답을 내리긴 힘들다. 모게는 과거에 자신이 연루되었던 어떤 한 소녀의 죽음이 관련된 사건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나시마와의 항해 도중 큰 폭풍우를 만난 이후, 모게는 나시마를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모게와 헤어진 나시마는 어쩌다가 집을 떠나 방황하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모게와 만나게 되었는지 취조당한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난파된 배에서 모게에 의해 구조되었다는 거짓말을 끝내 지키지 못한다. 나시마는 유괴당한 어린 소녀가 되었고, 모게는 유괴범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빌미로 모게는 과거의 그 사건으로부터도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아자르 호까지 빼앗기게 된다. 바닥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허약해진 심신을 이기지 못해 병원에서 죽어간다. 그러는 사이에 성인이 된 나시마는 공부를 하는 대학생이 되었고, 병원에 입원하기 전 모게가 아자르 호에 몰래 설치해둔 부탄가스통을 이용해 동료와 함께 아자르 호를 몰래 띄우고 폭파시켜버린다. 모게와의 우연한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었던, 나시마에게는 처음으로 가슴 벅찬 자유와 해방을 느끼게 해주었던 아자르 호는 그렇게 영원히 사라졌다. 모게와 아자르 호는 생명을 같이 했던 것이다. 

행운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이리저리 뒤튼 뒤 나는 이 둘의 만남을 행운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우기고 싶진 않다. 우연이긴 했으나 행운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우연한 만남이 가져온 결과는 두 사람에게 있어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가슴 깊이 잊히지 않을 만남, 그 만남을 과연 나시마는 아픔과 슬픔 없이 기억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만남은 불행에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같은 어원, 같은 발음을 가진 ‘아자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이 책의 제목이 ‘행운’이 아닌 ‘우연’으로 정해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라고 조용히 생각해본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