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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에 대한 동네 형의 진심 어린 조언.
장강명 저, ‘책 한번 써봅시다’를 읽고.
6년 만에 힘들게 박사 학위를 받아냈을 때, 사람들이 박사라고 불러주면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나름대로 그에 합당한 애를 써서 성취한 대가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새로이 듣게 된 ‘작가’라는 단어 앞에선 부끄럽기만 하다. 그 말을 듣기에 나는 여전히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작년 말, 나는 한 일인 출판사 대표의 위험지수 높은 고마운 믿음 덕분에 책 한번 써본, 소위 ‘저자’가 되었고, 또 얼마 전에는 한 작은 기독교 출판사에서 개최한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부문 가작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작가라고 불리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리고 이 부끄러움은 두 번째 책을 낸다고 해서 쉽게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나는 나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기에 한참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서점에 가면 글쓰기에 관계된 책들 앞에서 기웃거리고는 한두 권을 훑어본다. 구매하는 책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서점에 갈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는 의식 중 하나다. 내 마음엔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말이다.
나와 같은 세대인 작가,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를 구매하게 된 이유는 그의 유튜브 강의를 몇 개 들어본 경험과 그가 말하는 스타일에서 짐작되는 진정성 때문이다. 나에게 비친 장강명은 자기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와 주관적인 생각을 애써 포장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담백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말속에서 진정한 겸손함을 보았다. 거짓이 배인 입바른 겸손함이 아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줄 아는 겸손함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나의 직관적인 느낌과 판단은 옳았던 것 같다. 이 책에서 그는 그가 작가가 되기까지의, 그리고 작가가 되고 나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예비작가에게 진심 어리고 실제적인 조언을 아낌없이 선사한다. 글쓰기에 관련된 많은 책들을 꽤 오랫동안 훑어본 나로서는 이 책이 가지는 차별적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장강명이라는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장강명은 책이 중심에 있는 사회, 즉 책이 의사소통의 핵심 매체가 되는 사회를 꿈꾼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릴 줄도 모르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그런 세상을 소망한다. 그곳은 생각이 퍼지는 속도보다는 생각의 깊이와 질을 따지는 곳이라고 말한다. SNS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점점 긴 글을 읽지 않는다. 카드 뉴스와 같은 짧은 글, 요약 버전의 글을 선호하며, 이젠 그마저도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매체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긴 글만이 아닌 글 자체를 읽지 않게 되고 있는 것이다. 읽기 않고 보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게 되면 나중엔 결국 그것을 못하게 되는 것처럼, 언젠가 인류가 읽지 않게 되는 세상이 불쑥 도래할까 두렵기도 하다. 평소에 내가 가진 생각과 공명을 이뤄 나는 그의 소망에 두 손을 모았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책 쓰기’라는 주제로 써진 수많은 책들의 거품을 언급한다. 많은 글쓰기 관련 책들은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주겠다면서 연습하기 좋은 공원의 조건을 길게 나열하는 것과 같다는, 단번에 공감이 가는 비유를 든다. 그가 말했듯이 자전거는 적당히 평평하고 사람 적은 가까운 공터에 가서 연습하면 된다. 글 쓰기도 마찬가지다. 어떤 특별한 비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비법을 찾아 글쓰기 관련 책들을 탐독하는 건 아마도 자기 계발서에 심취해 남들이 모르는 은밀한 샛길을 찾아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려는 기회주의자으 마음과 같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장강명은 강조한다. 그런 지엽적인 것들 말고, 글 쓰기의 본질은 하나의 테마로 200자 원고지 600매를 쓰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전문 레이서가 아닌 동네 형의 자리에서 글 쓰기에 대한 진정성 어린 조언을 하기 시작한다.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글 쓰기는 재능이 없어도 된다. 글쓰기 잠재력은 함부로 판단하기 어렵다. 학창 시절 들었던 선생님의 평은 참고사항일 뿐이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특히 이 부분에선 단락을 그대로 아래에 옮겨본다. 아마 글 쓰기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확 꽂히는 말이 아닐까 해서다.
| 형편없는 책을 발표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까 봐 무서워서 책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책을 쓰지 않고 계속 후회하며 사는 것. 둘째,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것. 셋째, 멋진 책을 쓰고 후회하지 않는 것. 물론 멋진 책을 쓰는 게 제일 좋다. 그리고 형편없는 작품을 내고 괜히 썼다며 후회하는 것과 책을 아예 쓰지 않고 후회하는 것, 둘 중에서는 졸작을 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 졸작을 써도 실력과 경험이 쌓이고, ‘다음 책’이라는 기회가 또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 기회도 없다.| 60-61페이지 발췌.
그리고 그는 글 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유독 왜 쓰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그 질문하는 사람들을 향해 일갈한다. 왜 쓰느냐는 질문은 왜 골프를 치냐, 왜 산행을 하냐, 왜 달리냐는 질문과 같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프로 골프선수가 되기 위해서, 산악인이 되기 위해서, 달리기 대회 우승을 하기 위해서 골프를 치고 산행을 하고 달리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을 목적으로 해야지만 그 행위들이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글 쓰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글은 베스트셀러 작가나 대문호가 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다. 그거면 된다. 책은 그러다 보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서 충고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작법서를 참고는 하되 너무 신뢰하지는 마라고.
이런 것들 말고도 꽤 많은 조언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딱딱한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아닌 친한 선배나 동네 형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서, 글 쓰기에 관한 책을 고르느라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적극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역시 글은 멋보다는 진정성이다.
#한겨레출판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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