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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정유정 저, ‘종의 기원’을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8. 2. 11:25


악의 진화
 
정유정 저, ‘종의 기원’을 읽고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존재할까? 사람을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선한 사람은 선한 행동을, 악한 사람은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행동은 생각과 마음에서 기인하므로 선한 행동은 선한 생각과 선한 마음에서, 악한 행동은 악한 생각과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람이 그렇게 단순한 존재일까? 아닐 것이다.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보는 건 인간의 본성을 전혀 모르거나 인간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유아적 발상에 불과하다. 이율배반성, 모순, 예측불허성과 같은 단어들이 존재하는 이유,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 심리학과 정신분석학과 범죄학이 대두되고 발전한 이유, 심지어 도스토예프스키가 시대를 초월하여 지속해서 읽히는 이유 역시 인간의 본성은 함부로 정의할 수 없으며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그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이 창작의 영역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되는 이유도 여전히 인간의 본성은 신비의 영역에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자신이 좋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싫기도 하는, 인간은 요컨대 결코 어떤 하나의 딱지를 붙여서 정의할 수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휘몰아치는 필체를 구사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정유정은 이번에도 인간의 악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시나 섬뜩하다. ‘7년의 밤’에서 오영제로, ‘28’에서 박동해로 분한 악이 ‘종의 기원’에서는 한유진으로 분한다. 한유진의 악은 오영제와 박동해의 그것보다 더 강하게 그려진다. 게다가 한유진은 박동해와 오영제보다도 어리다. 오영제는 가정을 가진 중년 남성이었고, 박동해는 군대를 다녀온 청년이었다. 한유진은 태생부터 사이코패스로 등장한다. 악의 발현도 훨씬 이르다. 한유진은 일찍이 9살 때 첫 살인을 저지른다. 대상은 친형이었다. 소설 속 현재는 한유진이 26세로 그려지는데, 분량의 대부분은 한유진이 전혀 모르는 여자 한 명과, 엄마, 이모를 며칠 사이에 간단히, 깔끔하게 다 죽여버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에 할애되어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독자가 한유진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 한유진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통찰할 수 있는 렌즈로 작용한다. 특히, 간질인 줄 알고 평생 약을 먹고 살아왔는데, 실제로 그 약은 간질이 아니라 그의 안에 내재하는 사이코패스의 발현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된 것이었다는 설정은 한유진의 분노를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어릴 적 세계적인 수영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그의 삶을 망가뜨린 장본인은 약이었고, 그 약의 정체를 속여 성인이 될 때까지 그를 조절했던 모든 기획은 정신과 의사였던 이모와 엄마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가장 포식자에 해당하는 부류에 속한 한유진을 사회에 무해한 존재로 평범하게 키우기 위한 이모와 엄마의 마음도 충분히 공감이 갔지만,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차치하고 평생 먹은 약의 정체와 자신의 실제 상태를 모른 채 살아온 한 인간의 비애를 생각하면 그것 역시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사이코패스와 악을 과연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이코패스 역시 한 인간이라서 인권과 인격이 있기 때문에 동물처럼 애완동물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소설 속 플롯은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사람을 어떻게 가정과 사회에서 대우하고 보살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경고장으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7년의 밤’이나 ‘28’에서와는 달리 ‘종의 기원’은 한유진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였다. 3인칭으로 존재하던 악의 실체가 1인칭, 그것도 1인칭 관찰자도 아니고 급기야 1인칭 주인공 자리로 등극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살인자의 독백이나 일기로 읽을 수도 있다. 이는 정유정이 인간의 탈을 쓴 악의 실체를 소설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하고 애를 썼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쨌거나 작가의 일종의 분신이기 마련이기에 이 작품을 쓰면서 얼마나 정유정이 악의 모습을 치열하게 연구하고 노력했을지 생각하면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악은 진화한다. 적어도 정유정의 작품 세계에서는 분명한 것 같고, 그녀가 작품 후기에서 밝히듯 그녀 역시 이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한유진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통해 악의 화신을 불러내어 우리 모두 안에 조금씩은 존재할 악함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끔찍하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유정의 작품에 매혹되고 단숨에 읽어내고야 마는 우리들은 어느 정도 우리 안에 내재하는 오영제와 박동해와 한유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유정은 한유진의 내면세계를 두 가지 방법으로 기술한다. 하나는 일기와도 같은 실시간 독백이다.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한 인간임을 강조하고 싶은 저자의 의도도 잘 녹아 있다. 한유진 역시 갈등하고 고민하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 회상이다. 약과 발작, 그리고 의도적 망상 때문에 불완전한 과거 기억을 완전한 기억으로 짜 맞춰가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긴장과 스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추적해가는 과정, 그에 따라 한유진의 마음과 생각이 변모해가는 과정에서는 애처로움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공감은 한유진이 순간 저질러버리는 범행으로 인해 삽시간에 사라져 버리지만 말이다. 한유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마는 그 본능은 현실세계에서 살인자의 주도면밀함으로 나타난다. 독자의 입장에선 기겁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 여럿 등장하기 때문에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두세 시간이면 아마도 다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가는 사람이 사이코패스 살인자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임팩트가 있는 작품인데, 작가가 정유정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종의 기원’은 정유정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악함에 대한 사유 또한 해볼 수 있는 기회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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