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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아무거나, 라는 대답에서 성의 없음과 거짓과 비겁함의 냄새를 맡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별생각 없이 그렇게 툭 내뱉은 적이 많았다. 언뜻 들으면 배려처럼 들린다. 사실 그 점을 노리는 것이다. 배려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배려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그러나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엔 배려가 없을 때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웃고는 있지만, 그 웃음에도 무언가 들키지 않으려 하는 조심성이 묻어나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도 귀찮음일 것이다. “아무거나”라는 말을 내뱉고 “정말”이라고 첨언까지 하는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귀찮음이, 성의 없음이 들통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선수 치는 것일 테다.
“아무거나”라는 대답의 이면에는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주고 선택해주길 바라며 상대방을 테스트하는 은밀하고 못된 욕망이 있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다면 선택 사항 중 아무거나 하나를 골라 말하라. 당신의 말을 듣고 정말로 상대방이 마음대로 골랐을 때 “아니, 그건 말고”라는 마음이 들어서 그걸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후 그 행동까지 상대방을 이중으로 배려했다고 여기는 비겁한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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