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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난 침묵에 꽤 약한 편이었다. 대화 도중 상대방이 돌연 침묵으로 응답할 때마다 나는 속으론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무례한 질문을 한 건가,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건가 싶은 마음에 나도 몰래 소심한 자기 검열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랬을까. 상대방의 질문에도 나는 좀처럼 침묵으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편이다. 웬만하면 단번에 궁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조금은 직접적이고 조금은 직설적인 대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정답을 찾아주고 싶다는 마음이 고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나는 그게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고 여겼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게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답답한 것을 못 참는 성격에 침묵은 내가 하든 상대방이 하든 어울리지가 않았던 것이다. 내 스타일로 대화를 이끌고 싶어 했던 유아적인 태도를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고 믿었다. 이게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던 날. 나의 가소로움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상대방이 침묵하면 예전처럼 어색한 기분에 휩싸이지 않는다. 대답하기 싫은가 보다 한다. 그리고 그 침묵 때문에 크게 아랑곳하지 않고 잠시 기다린 후 그다음 대화를 이어갈 줄도 안다. 어찌 보면 노련해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제야 상대방을 조금 배려할 줄 알게 되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침묵에 강해질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면 침묵을 마주할 때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은 정답을 요구하는 문화에 길들여진 나의 조급한 성격, 그리고 어지간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픈 치기 어린 허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모든 질문이 정답을 가지진 않는다. 아무리 친해도 대답하기 싫은 게 있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침묵으로 응대할 땐 나도 잠시 침묵으로 동조하다가 모종의 암묵적인 합의에 이르면 그때 다시 대화를 재개하거나 다른 활동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면 된다. 상대방의 침묵을 존중해주는 것. 정답을 주는 것보다 어쩌면 더 큰 배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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