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성장은 언제나 원점을 경유한다.
햇살은 따스한데 대기는 여전히 차가운 날. 물에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나 자신이 이물질이 되어 또 하루를 부유하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익숙하지 않다는 것에 이방인은 더 민감하다. 그래 봤자 손에 쥐었던 한 움큼의 안정감이었을 뿐인데, 이런 날이면 그것마저도 모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뒤이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은 바로 외로움과 자괴감이다.
양은 냄비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라면 정도를 끓이기에 딱 적당한. 뚝배기를 바랐으나 양은 냄비에 머물고 마는 인생. 양은 냄비도 얼마나 가치가 있는데, 하는 격려 아닌 격려도 모두 뚝배기들이 하는 말이라는 사실은 양은 냄비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암만 맛있다 하지만 라면은 별미일 뿐이니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며 걱정해봤자 소용없는 거라고, ‘지금 여기’를 감사하며 잘 살아내라고, 하는 진심이 담긴 조언도 이런 날이면 삐딱하게 들린다. 어느 정도 내일이 보장되어 있어 큰 걱정 없이 살아가는, 마음 좋은 사람의 여유 있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동안 나를 통과하며 흔적을 남긴 사유와 경험들이 단번에 증발되는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아래로 흐르는 시기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또 노래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성장해갈 것이다. 성장은 언제나 원점을 경유한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조 (0) | 2021.10.07 |
|---|---|
| 뒷모습 (2) | 2021.09.14 |
| 낯섦을 경험하는 용기: 코미디가 아닌 유머 (0) | 2021.08.30 |
| 침묵 (0) | 2021.08.29 |
| 작은 소리, 잘 사는 삶 (0) | 2021.08.29 |
- Total
- Today
- Yester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