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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낯섦을 경험하는 용기: 코미디가 아닌 유머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8. 30. 06:53

낯섦을 경험하는 용기: 코미디가 아닌 유머.

가끔 어떤 장소에 가면 그 장소가 주는 특정한 감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낯설지만, 그래서 금지된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들기도 하지만, 무언가 나를 멈추게 하는 매혹적인 면이 있어 나는 그 감상에 젖어드는 나를 한동안 그대로 내버려둔다. 낯섦에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고, 이는 나만으로 가득 찼던 자기중심적인 눈을 확장시키는 단초가 된다.

낯선 여행지에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면 데자뷰랄까 하는, 불특정하지만 나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는 당황스러운 느낌에 노출될 때도 있다. 그 당황스러움이 두려움이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난 그 당황스러움을 반길 줄 알게 되었다. 거기에서 두려움이 아닌 친숙함과 안정감까지 느끼게 되었다. 낯섦 가운데 낯익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낯섦이 더 이상 낯섦이 아닌 낯익은 그 무엇으로 각인되는 과정.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성숙의 단면일 것이다.

이런 예기치 못한 사소한 경험들은 묘한 힘이 있어 오랜 잔상을 남긴다. 귀신의 집에 스스로 두 번째 방문한 아이의 성장이랄까. 혐오스럽고 멀리 해야만 했던 것들도 놀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띠며 재각인되는 것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끝내 모를 일들이 이 세상엔 너무 많다. 나는 이질감과 혐오감까지 느끼게 하는 것들 가운데 많은 경우는 우리가 그렇게 진중하게 배제하고 배척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궁금하다. 낯섦을 계속 쳐내면 최후에 무엇이 남게 될지. 순수함을 가장한 옹색함과 옹졸함이 아닐지.

변함이 없다는 말의 참 의미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함이란 순진함이 아니다. 변화와 성장을 무시한 채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순진함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 순진함이 어울리지도 않는 권력을 등에 업고 떠들어대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다. 나는 낯섦을 경험하는 용기와 그것의 필요성, 그것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는 변함없음과 순수함을, 고인 물이 아닌 늘 새로운 유입과 방출이 있어 졸졸 흐르는 개울가에서 발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코미디가 아니라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유머다. 코미디는 궁극적으로 모두를 파괴하지만 유머는 모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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