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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제자리걸음

가난한선비/과학자 2021. 10. 17. 11:30

제자리걸음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는 행위다. 잡을 수 없는 시간과 그 잡을 수 없는 시간이 훑고 지나간 고유한 공간을 글자로 담아내는 행위다.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들을 글로 그려내고 글로 연주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만남은 작가를 통해 글로 형상화된다.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나 절박해진다. 지금도 현재는 시시각각 과거로 물들어가고 미래는 현재로 전환된다. 이 꿈만 같은 나날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순간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흘러가버린 보석 같은 시간들. 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노래할 수 있는 도구가 있고 그 도구를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먼저는 객관화를 통한 관찰, 관찰을 나에게 적용한 성찰을 통한 내면의 치유, 그리고 그 치유를 기반으로 얻은 삶의 작은 통찰들을 글로 담아내고 싶다. 훅 불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현재를 허투루 날려버리고 싶지 않다.

쓰다 만 습작 소설은 달랑 세 페이지를 거의 반 년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세 페이지는 한때 열 페이지이기도 했다가 다시 한 페이지로 회귀하기도 했다. 세 페이지이지만 같은 세 페이지는 아닌 셈이다. 변함이 없는 것 같아도 계속 운동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제자리걸음일지라도 이렇게 운동성이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한다.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 그 살아있음은 곧 무언가를 잉태해낼 생명력을 상징하니까. 언젠간 이 세 페이지가 백 페이지가 되리라. 나는 그날까지 꾸준히 움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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