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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만만한, 그러나 충분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작품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을 읽고

2년 전, 도스토예프스키 5대 장편이라 불리는 후기 작품들을 다 읽고 나서 크게 다짐했던 게 하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 단,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붙였다. 내리읽지 않기. 어떤 한 작가에게 매료되면 그 작가의 작품 전체를 읽고 싶어 지게 된다. 대부분은 생각만으로 끝나지만, 간혹 소수의 독자들은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이렇게 실행에 옮긴 독자들 대부분의 행로는 내리읽는 것이다. 즉, 한동안 그 작가의 작품에만 빠져 지내기로 계획하는 것이다. 이런 몰입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그 작가의 필체에 너무 익숙해진다는 것, 그래서 그 작가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에 둔감해진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몰입해서 읽은 만큼 남은 작품이 점점 바닥난다는 것. 그 사라짐의 허탈함을 잘 알기에 나는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만은 그렇게 읽고 싶지 않았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끼게 되는 법이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 않기로 했다. 천천히 수년에 걸쳐 함께 하고 싶었다. 물론 쉽진 않았다. 자꾸만 손이 가는 것을 의지로 버텨야 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작품 하나를 그만 까버리고 말았다. 2차 자료가 아닌 그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지 1년 만이니 그래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젠 그의 작품을 하나 읽고 나면 읽었던 작품 개수에 대한 뿌듯함보다는 아직 읽지 않고 남은 작품 개수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생애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를 연구한 세계 각지의 수많은 문학도들에 의해 대중에게 비교적 자세하게 알려진 작가 중 하나다. 그가 살았던 집이나 도시, 가족 관계 등 세부적인 사정은 모르더라도, 그가 생계형 작가였다는 점 (석영중 교수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했다기보다는 무분별한 지출 습관 때문에 거의 평생을 돈이 부족한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두 번째 아내인 안나를 만나고 나서 이러한 사정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를 연구한 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크게 초기, 중기, 후기 세 부분으로 나눈다는 점, 그리고 그 기준점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가 뻬뜨라셰프스키 독서 서클에서 당시 금서였던 ‘고골에서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만으로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떠나야만 했던 시기라는 점은 기본적으로 숙지해두면 좋다. 초기는 시베리야 유형 가기 전, 중기는 4년 간의 감옥생활을 끝내고 시베리아에서 군인 신분으로 강제 복무했던 4년과 모든 유형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재기를 준비하던 수년간의 짧은 기간, 그리고 후기는 그러한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그의 최대 걸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까지 이르는 시기로 이해하면 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은 모두 후기에 쓰였는데, 그의 철학, 신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적인 심오한 통찰이 빛을 발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유형 생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 작품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은 중기 작품에 해당된다.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11 작품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읽어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스타일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인 까닭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그리 길지도 않거니와 (열린책들 판으로 달랑 348 페이지),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주 공간이 아저씨네 저택뿐이라는 점, 그리고 작품의 핵심이라고 보이는 두 인물 간의 비교 대조가 뚜렷하기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장광설이나 자칫 3류 코미디 정도로 느껴질 수 있는 여러 당황스러운 장면들이 나와도,  혹은 러시아 문학 특유의 길고 복잡하고 다채로운 이름들이 등장해도 나는 당황하지 않고 즐기며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이제 처음 읽어보려고 하는 독자가 있다면 나는 이 작품을 주저 없이 추천하고 싶다.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난해하다고만 여겼던 스스로의 판단을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당장 내려놓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다른 작품에 비하면 가독성도 좋고 재미도 있으며 이해하기도 쉽고 무엇보다 빠른 시간 안에 완독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철저하게 ‘도스토예프스키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읽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상이겠지만, 이 책으로 처음 도스토예프스키를 접하는 독자라도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 때와 비교해서 느껴지는 독특하고 색다른 (어쩌면 불편한) 느낌을 ‘도스토예프스키적’인 것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만큼 이 작품 안에는 압축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만의 필체가 살아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장광설을 포함하여 정신병자 아닌가 싶은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장면들의 연속, 그러면서도 기가 막히게 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심리를 꿰뚫어 본 듯 그것을 날 것 그대로 끄집어내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 그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특별한 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스타일이라 이해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5대 장편의 평균 분량이 약 천 페이지 정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350페이지 정도의 이 작품은 비록 장편 소설로 분류된다 하더라도 짧은 축에 속한다. 가장 복잡하고 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는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양할 만큼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각기 고유한 캐릭터와 서사를 가진다. 그리고 그 서사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마침내 거대한 스케일의 산이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은 단편적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세료자가 그의 아저씨이자 퇴역 대령인 예고르 일리치 로스따네프의 편지를 받고 그의 저택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편지에 따르면 그 집에 포마 포미치라는 한 인물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세료쟈는 자연스레 아저씨가 걱정되었고, 자신이 직접 그 집을 방문하여 문제를 확인하고자 했으며, 확인이 되면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저씨인 예고르 일리치는 지주 (제목에 나오는 ‘스쩨빤치꼬보’ 마을의 지주)이자 그 집의 주인인데 반하여 포마 포미치라는 인물은 그저 식객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집에 실제로는 갑을 관계가 역전된 기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저씨는 마치 ‘백치’의 미시낀 공작의 이미지를 언뜻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로 그려진다. 순진하고 착하고 남에게 해를 입힐 줄 모르며 언제나 문제가 생기면 자기 탓을 하며 쩔쩔매는 고결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반면, 포마 포미치는 그와 정반대의 이미지, 즉 위선적이고 허세를 떨기 좋아하며 그 허세로 사람들을 자기 맘대로 부리는 동시에 언제나 자신이 모욕당했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주위를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로 그려진다. 식객 같은 주인, 주인 같은 식객,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바로 이 작품의 화두다. 화자인 세료쟈는 전체 이야기의 전개에서 그리 중요하게 그려지진 않지만, 세밀한 관찰자로서 예고르 일리치와 포마 포미치, 이 두 인물 간의 차이를 조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재미있게도, 혹은 기발하게도 작품에서 제기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포마 포미치라는 인물이지만, 그 문제의 해결자 역시 포마 포미치다. 이런 역설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그러나 한편으론 사람의 심리를 깊게 통찰한 사람만이 가능한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를 피하기 위해 여기에 적진 않겠지만, 한 가지 힌트를 준다면,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연애 혹은 치정 (물론 돈, 도덕, 가난 등의 소재와 연결되어 있다. 단, 이 소설엔 살인이 등장하지 않는다)이라는 지극히 통속적인 소재다. 그러니 가볍게 마음을 먹고 충분히 재미를 느끼면서 이 작품을 쉽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꽤 많은 단편들을 합치면 아직 내가 읽지 않은 작품 수가 읽은 작품 수보다 많다. 물론 분량으로 따지면 훨씬 적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도스토예프스키를 천천히 즐기기로 다짐했던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모처럼 만난 장광설과 그 특유의 황당무계함이 어찌나 반갑던지. 다음 작품은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기대가 되고 기다려진다. 하지만 끝까지 아끼면서 읽어나갈 것이다.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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