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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아름다운 문장 vs. 아름다운 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2. 16. 13:41

아름다운 문장 vs. 아름다운 글

그렇다. 영화 같은 장면들을 경험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글은 아름다운 문장 없이도 충분히 쓸 수 있다. 살고 보니 영화 같은 삶이었을 수는 있어도, 영화 같은 삶만 쫓다 보면 그 인생은 불만족과 공허로 가득 찬, 그래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삶이 된다. 마찬가지다. 진정성 있는 글을 성실하게 쓰다 보면 아름다운 문장을 쓰게 될 기회가 자연스레 주어지게 되는 것이지, 아름다운 문장을 사냥하러 다닌다고 해서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사냥하러 다니는 사람은 일상을 버려두고 영화 같은 삶을 쫓는, 즉 무지개를 쫓는 사람과 같다. 그리고 글쓰기 연습에 그런 사냥은 존재하지 않는다. 샛길을 찾는 약삭빠른 사람은 결코 글쓰기 연습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답게 기억되는 영화가 있는가. 영화 속 주인공이 미남미녀라서 그 영화가 아름답게 기억이 되는가. 아니면 손에 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몇몇 장면들이 인상 깊어서 그 영화가 아름답게 기억이 되는가. 아닐 것이다. 의식에 기억되는 것과 무의식에 각인되는 것은 다를 때가 많다. 우리가 과거의 어떤 장면들을 떠올릴 때 이상하게도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로운 일상의 잔상들이 많다는 사실은 이를 명징하게 증명해준다. 아름답다고 기억되는 건 우리의 의식보다는 무의식이, 머리보다는 몸이, 이성보다는 정서가 먼저 반응한 것을 이성의 작용으로 의식으로 끄집어내어 말이 되게끔 역으로 해석한 현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해석들은 종종 말이 되지 않고, 계속 생각해도 결국 모른다는 답에 이르게 된다. 무언가가 아름답다고 마음에 새겨지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아름답다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기도 하거니와 한두 가지 이유만으로 그런 각인이 생겨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주인공의 외모, 풍채, 인상, 대사 혹은 그들이나 감독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들 역시 영화 전체에 흐르는 전반적인 배경에서 비롯된다. 배경, 즉 맥락이 훨씬 더 큰 무게를 차지하는 것이다. 맥락 없는 아름다움은 없다.

그렇다. 맥락이다. 텍스트가 아닌 콘텍스트다. 행이 아닌 행간이다. 문자로 드러난 게 아닌 문자 이면에 숨어있는 작가의 그 무엇이다. 그리고 그 무엇은 곧 작가를 대변하는 법이다. 이런 논리가 맞다면, 아름다운 글은 아름다운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결론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감성팔이식 공허한 낭만을 일컫는 게 아님)

이전 글에서 좋은 글은 진정성과 성실함이 기반이라 했다. 이를 이번 글의 맥락과 연결시키면 다음과 같은 말이 만들어진다. 아름다움은 곧 진정성과 성실함으로 표현된다고. 텍스트로 장난질한다고 해서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글의 깊이와 무게. 그건 곧 글쓴이의 삶의 깊이와 무게이며, 진정성과 성실함 없이 관념이나 감상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진정성과 성실함 없는 관념과 감상의 실체는 허영이고, 그건 허세로 표현되며, 그것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공허다. 참고로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만 하는 사실; ‘공허’는 ‘아름다움’ 역과 가장 반대쪽에 있는 역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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