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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읽기와 쓰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3. 7. 08:26

읽기와 쓰기

어쩌면 읽기가 먼저냐 쓰기가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을지도 모른다. 문자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따지는 물음이 아니다. 이건 읽기와 쓰기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어떤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제거해보는 것이다. 읽지 않을 때와 읽을 때를 비교해볼 때 나의 쓰기가 어떻게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점검해보면 읽기가 쓰기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읽기는 쓰기의 근간이 된다. 읽기가 배제되면 쓰기는 지속될 수 없다. 어쩌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명령대로 무언가를 써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면, 글은 어떤 영감이 주어질 때에만 쓸 수 있다. 이때의 영감이란 어떤 단상이나 일순간의 느낌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지닌다. 이런 영감은 읽기에서 온다. 다른 길은 없다. 오직 읽기에서 온다. 물론 이때의 읽기란 단지 독서를 말하진 않는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소한 관찰도 모두 읽기에 속한다.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고서는 무언가가 나올 수 없는 법이다. 즉,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쓰기는 출력이고 읽기는 입력이다. 입력이 없으면 출력이 존재할 수 없듯, 읽기가 없으면 쓰기는 존재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읽기만 한다고 해서 쓰기가 자연스레 되진 않는다. 쓰기는 결국 쓰기로부터 나온다. 읽기가 없으면 쓰기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쓰기가 없으면 그 쓰기는 지속될 수 없다. 지속되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즉, 읽기로 인해 존재 가능성이 생긴 쓰기는 쓰기로 인해 스스로 그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쓰기 시작한다면 읽기란 불필요한 것일까? 아니다. 쓰기가 쓰기로 인해 스스로 존재 유지 가능성을 취할 수 있지만, 성장 없는 유지는 결국 멈추게 되고 그 멈춤은 곧 죽음으로 연결되기 마련인데, 쓰기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읽기다. 다시 말해, 읽기는 쓰기의 존재 가능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쓰기로 존재 유지가 가능하게 된 쓰기의 성장을 일으킨다.

읽기와 쓰기는 결코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둘은 하나이고 그저 어디에서 보여지는지에 따라 읽기와 쓰기로 불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 읽기와 쓰기는 항상 함께다. 읽기 없는 쓰기란 상상할 수 없고, 쓰기 없는 읽기 역시 마찬가지다.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읽기 없는 쓰기와 쓰기 없는 읽기에 대해 상상해보자. 위에서 내가 언급한 생각에 따르면, 먼저 읽기 없는 쓰기는 존재 유지는 할 수 있으나 성장은 없고, 성장이 없으면 결국 쓰기는 멈추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실제로 읽을 시간 없이 늘 기계처럼 써대기만 하는 필자들의 글에선 매너리즘이 느껴진다. 참신한 것 같았으나 가진 건 그게 다다. 금세 지루해지고 했던 말을 표현만 조금 바꿔서 또 하게 되는 식의 중언부언의 향연을 선보이게 된다. 많이도 써놓았지만 공허하고, 성의껏 다 읽어도 안 읽은 것만 못한 글에 된다.

반면, 쓰기 없는 읽기는 어떨까? 읽기 없는 쓰기는 성장과 발전이 거세되어 죽을 날을 앞둔 채 숨만 쉬고 있는 노인에 비유할 수 있고, 쓰기 없는 읽기는 정리되지 않은 잡다한 지식과 생각들의 더미 가운데 길을 잃은 채 그것들을 다 섭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교만해진 아이에 비유할 수 있다. 자기 생각인지 어디서 주워 들은 것인지 분간조차 어렵기 때문에 사유나 주장에 일관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높고 자주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읽기란 숭고한 일을 가장 추악하게 타락시킨 자가 있다면 바로 이런 자들일 것이다. 쓰지 않고 읽기만 하는 사람. 나는 이들을 그저 몽상가 혹은 이론가라 부르고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나아가, 나는 읽으면 쓰게 되고 쓰면 읽게 된다고,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생명을 가졌다면 존재하는 게 당연하고, 존재한다면 그것을 유지하는 게 당연하며, 유지한다면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장하고 싶어 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들며 읽기와 쓰기가 주는 이 마력을 경험하고 조금이나마 전하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읽고 또 쓸 것이다. 십 년 후에 혹은 이십 년 후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묻는다면, 인생이 계획대로 된 적이 거의 없기에 밥벌이로 혹은 어느 지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진 나도 모르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십 년 뒤에도 이십 년 뒤에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무언가를 읽고 무언가를 쓰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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