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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글쓰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2. 15. 10:48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글쓰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부끄러운 듯 고백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가만히 들어보면 의외로 많은 경우 “멋들어진 문장을 구사하지 못해서”인 것을 알 수 있다. 문득 나는 궁금해진다. 과연 아름답고 멋진 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이 글쓰기 능력과 동일한 의미를 가질까? 글쓰기 능력을 과연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으로 환원시킬 수 있을까? 좋은 글은 아름다운 문장이 없으면 쓸 수 없는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내 대답을 하자면, “NO!”.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은 욕망은 글을 잘 쓰고 싶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는 있으나, 목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만약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글쓰기를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정보 전달이 목적이고, 그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은 마치 글쓰기가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난도의 예술 이기라도 한 듯 여기는데, 나는 이런 현상이 위험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문장은 번뜩이는 영감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영감은 완벽한 문장으로 주어지지 않고 어떤 단어나 발상의 전환 등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글을 쓰고자 하는 숱한 노력의 시간이 없다면,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해도 알아챌 수도 없고 글로 표현해낼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는 그런 특별한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빛나는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나 뒤의 어두운 여백이 바로 글쓰기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결코 허세를 부리기 위한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름다운 문장이 곁들여진 어떤 글을 읽고 마음이 감동되었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아름다운 문장 때문이 아니라 그 문장과 다른 문장들 사이에 주어진 여백, 즉 글쓴이의 진정성이 깃든 마음이 읽는 이의 마음에 와닿아 정서적인 화학반응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글은 문장 자체로 말하지 않는다. 화려한 수사나 뒤통수치는 기발한 표현, 혹은 심오한 듯 보이는 아포리즘 같은 요소는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것들은 좋은 글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하며 읽는 이의 주위를 교란시키는 부작용도 일으킨다.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나는 어수룩하더라도 진정성이 깃든 글을 사랑한다.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누구 글을 보고 따라 하는 건지 모를 정체를 알 수 없는 글. 아름답고 멋진 형식을 갖췄으나 전달하는 건 공허뿐인 글. 당당하게 자기 옷을 입은 게 아니라 남의 옷을 몰래 훔쳐 입은 듯하게 보이는 글. 이런 가식과 위선, 즉 허세 부리기를 그럴듯하게 해내는 능력은 결코 글쓰기 능력이 아니다. 불필요한 곳에 힘을 들일 필요 없다. 담백하게 쓸 줄 아는 글을 먼저 쓰라. 계속해서 쓰라. 그리고 읽으라. 계속해서 읽으라. 그 지속이라는 과정 가운데 진화는 저절로 일어난다. 달인의 속도가 빠른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한히 애쓴 흔적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제발 그 애씀을 모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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