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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그리고 인간다움
채무자는 자신의 판단을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채권자의 눈치를 보게 된다. 돈의 유용성은 비단 생활의 편리함에서만이 아닌 판단과 발언의 독립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돈이 있으면 눈치를 덜 보게 된다. 자신감이 생긴다. 이성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돈의 힘이다.
돈은 곧 힘이다. 위의 단락에서 돈 대신 힘을 대입해도 의미는 똑같다. 어쩌면 더 핵심을 찌르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힘은 돈으로만 주어지지 않는다. 지위, 나이, 학력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인간관계에서 힘으로 작동한다. 이런 면에서 힘이 약한 자들은 상대적으로 힘이 강한 자들 앞에서 주눅이 들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게 된다. 죄도 짓지 않았는데 죄인이 된다. 갑과 을의 힘의 논리는 인간관계라면 어디나 작동하는 기본원리다.
이성을 사용할 수 있고 합리적일 수 있지만 인간은 대부분의 일상에선 꼴리는 대로 산다.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하자면, 습관대로, 자기가 욕망하는 대로 산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이 이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이다. 자기 합리화.
자기 합리화는 자기기만과 맞닿아 있다. 물론 이 과정은 다양성과 풍성함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변증법적 발전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첫 ‘정’은 언제나 전체의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전체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은 필수 불가결하다.
나는 바로 이 과정에서 사람의 됨됨이를 본다. 돈이 없어, 혹은 힘이 없어 옳은 말을 하지 못하고, 그런 자신을 합리화하여 마치 자신이 여전히 정의롭고 공정한 사람인 듯 스스로를 여기는 행위에서 나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발견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돈과 지위, 나이, 학력을 뛰어넘는 더 큰 힘이라 믿는다. 이 힘이 인간만이 가진 고결한 힘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한다. 가시적인 돈과 같은 갑을 논리의 힘이 아닌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지켜낼 수 있고 지켜내야만 하는 고귀한 힘. 그렇다. 나는 이 힘을 지닌 사람, 이 힘을 지켜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가시적인 힘을 초월하는 비가시적인 힘.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아무나 사용할 수는 없는 힘. 자기 합리화와 자기기만의 덫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힘. 안다. 그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는 걸. 그래도 나는 바라게 된다. 나는 그 길 위에 서겠다고, 나는 그 길 위에 선 사람과 연대하고 싶다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도 중요하지만 회색 인간을 중용이란 단어로 포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게 상대적이라는 식의 인생 달관자에겐 아무런 소망도 희망도 가치도 사랑도 없을 것이다. 그런 자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바라게 된다. 쳐낼 건 쳐낼 수 있는 힘, 아닌 건 아니라고 을의 위치에서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힘. 현실적으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이런 힘을 점점 더 갈망하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어려움을 기꺼이 도우면서 함께 가고자 한다. 나는 이게 인간다움의 중요한 부분이라 믿는다. 나는 가시적인 힘이 없어도 이런 근본적인 힘을 지켜내고 발휘한, 인간다운 인간으로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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