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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정황이 문학의 상상력을 입을 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악어’를 읽고

실화라고 운을 떼며 소설의 문을 여는 이 작품의 화자는 어느 날 이반 마뜨베이치 부부와 함께 악어를 구경하러 아케이드를 찾는다. 한 사람 당 25꼬뻬이까의 관람료까지 내며 들어간 전시장에서 그들을 맞이한 악어는 죽은 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얕은 물 웅덩이 속에 덩그러니 드러누워 있었다. 그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모두를 실망시켰다. 특히 악어 구경을 가장 먼저 제안했던 이반 마뜨뻬이치의 아내 엘레나 이바노브나로부터도 관심은커녕 혐오스럽다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자연스레 일행은 그 옆에 전시된 원숭이 우리로 재빨리 이동했다. 바로 그때였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은 비명소리가 홀 안을 가득 채웠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본능적으로 몸을 돌린 일행은 끔찍한 광경을 목도해야 했다. 옆에 있는 줄 알았던 이반 마뜨베이치는 악어에게 몸통이 반쯤 먹힌 채 공중에 들어 올려져 있었다. 그는 그 안에서 절망적으로 두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순식간에 악어 입 속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악어는 입 속에서 이반 마뜨베이치의 다리를 자기 쪽으로 돌려놓았고, 잠시 그를 토하는 듯 싶더니 다시 그를 허리 위쪽까지 끌어올렸으며, 다시 약간 뱉어 냈다가 꿀꺽 삼켜 버렸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악어는 이반 마뜨베이치가 목에 걸렸는지 마지막으로 입을 잠시 한껏 벌렸는데, 일행은 그 괴물의 아가리 속에서 절망스러운 얼굴 표정을 지으며 순간적으로 악어 목구멍 위로 살짝 튀어나온 이반 마뜨베이치의 얼굴과 그의 얼굴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안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악어는 마지막으로 용을 써서 그를 완전히 삼켜 버리고 말았다. 

위의 끔찍한 내용은 전체 6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단편소설 ‘악어’의 초반 여섯 페이지에 대한 요약이다. 가히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화자는 이게 실화라고 밝히고 있으니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독자로서 멘붕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목도할 때 받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 그러나 숨을 가다듬고 몇 페이지만 더 읽게 되면 이것이 모두 도스토예프스키의 설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실화라고 밝혔던 건 저자가 아닌 화자였다는 점을 내가 간과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방점은 단순히 한 사람이 산 채로 악어에게 잡혀 먹히는 사건을 보도하는 데에 있지 않고 그 이후에 전개되는 내용에 있다. 당연히 이반 마뜨베이치의 아내는 악어의 배를 갈라 남편을 꺼내야 한다고 흥분하며 소리쳤다. 독자의 입장에서, 특히 화자에게 나를 투영하며 이 책을 읽던 나에게도 엘레나 이바노브나의 요구는 상식적이었고 당연한 수순 같아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악어 주인의 입장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치밀한 설계 덕분이겠지만, 책 속에서도 엘레나가 악어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기 전에 악어 주인이 먼저 입을 열어 통곡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악어 주인은 두 손을 꼭 쥐고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오, 나의 악어,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카를르헨!” 그리고 악어 배를 가르자고 소리치는 엘레나를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그가 악어를 약 올렸어요. 무엇 때문에 당신 남편은 악어를 약 올렸습니까! 카를르헨이 터지기라도 한다면 당신이 물어내야 해요. 저놈은 나의 아들, 나의 하나뿐인 아들이란 말입니다!”

악어의 배를 빨리 갈라야 한다, 갈라봤자 이미 남편은 죽었을 텐데 뭐하러 가르냐, 등등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놀랍게도 어디선가 갑자기 이반 마뜨베이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둔탁하고 가늘고 날카로웠다. 바로 악어 뱃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던 것이다! 아내는 “여보, 당신 살아 있었군요!”하면서 기뻐하고, 악어 주인은 산 사람을 뱃속에 가지고 있는 악어는 반드시 관광상품으로써 돈벌이가 될 것을 확신하며 기뻐한다. 엘레나와 악어 주인의 실랑이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반의 살아있음으로 해결이 된 셈이었다! 아,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 진정 도스토예프스키다운 장면일 것이다.

그 이후 실제로 악어 주인은 돈을 벌었고, 화자는 악어 뱃속에 들어앉아 있는 이반과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반의 말인즉슨 악어 뱃속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우며 그 안에서 전 인류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는 완벽한 사회 체제를 구상할 수 있었고 진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갑자기 인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영웅이라도 된 듯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악어 뱃속에 들어가기 전엔 그저 평범한 관리에 지나지 않았던 사람이 악어 뱃속에 들어가자 영웅이 되어버린 사건. 그러나, 그래 봤자 그가 처한 곳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캄캄하고 좁디좁은 악어 뱃속일 뿐! 아, 이 아이러니!

환상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상천외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 이 작품을 읽으며 우선 나는 놀랍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런 상상을 도입하여 작품을 쓴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해설을 읽고 나서야 나는 이 작품이 1865년 당시 부르주아 자유주의 이념을 가진 급진주의자들을 조롱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악어 내부와 같이 어둡고 폐쇄된 공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그래서 현실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시대 정황을 고려한 이러한 해석을 읽으며 ‘아, 그렇구나’ 싶었지만, 나는 그러한 정치 풍자적인 관점보다는 작가의 상상력 관점에서 이 작품을 높이 사게 되었다. 적나라한 상황이 신문에 기재되면 한 순간에 머물고 말지만, 문학의 옷을 입고 재탄생하게 되면 이렇게 백 년이 넘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짧은 작품으로 만난 도스토예프스키의 또 다른 새로운 면모를 마주하며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매료된다. 배울 게 정말 많은 작가임에 틀림없다.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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