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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쉽고,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정확한 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1. 5. 23:12

쉽고, 단순하고, 자연스럽고, 정확한 글

여전히 나는 소설 한 권 쓰기를 꿈으로 가지고 있다. 한 달 전부터 읽기 시작했고, 아직 아껴서 읽느라 다 읽지 못한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읽으며, 제대로 된 글쓰기 공부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여러 장르 소설 읽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서에 있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만 고집하기에는 아직 나는 너무 어리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야기 전개에 긴장과 스릴을 넣기 위해서는 추리소설 (혹은 범죄소설) 만한 게 없다. 내가 사랑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역시 이러한 장르적 특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던가. 마침 나는 한 달 전 즈음 세계 x대 추리소설이라 불리는 작품 중 세 편을 구입한 적이 있다. 나는 이게 마치 신의 계시라도 되는 듯 여기며 어젯밤 아무런 주저없이 추리소설을 손에 들었다. 중학생 이후 처음이니 약 30년 만이다. 세 편은 다음과 같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그리고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 모두 중학생 때 읽었던 책이다. 비록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안정효가 가르쳐준대로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묘사나 설명, 독백이 아니라 대화가 주도한다. 추리소설이 대화 위주로 되어 있다는, 이 자명한 사실을 나는 어젯밤 깊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다시 보게 되었다. 마치 추리소설을 처음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역시 공부와 배움은 관점과 시선에 파문을 일으키고 세계관에 변화를 가져와 모든 걸 새롭게 한다. 그리고 문득 나는 언제나 자명한 것들에 이유를 묻고 새롭게 해석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 남고 싶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한 가지 더 안정효의 가르침을 확인했던 건 작가의 고뇌와 부단한 애씀에 대해서다.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쉽게 보이지 않는 것들 중 하나이며,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 중 하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 단순한 대화들, 개연성 높은 인과관계, 연이은 상황의 자연스러움 등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작가의 고뇌와 애씀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단순함을 위해 작가는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복잡함을 거치고, 자연스러움을 위해 작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부자연스러움을 통과해내는 것이다. 쉽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글. 정확한 글에 이어 명심해야 할 글쓰기 철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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