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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절제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2. 21. 08:50

절제


언제나 어려운 덕목이다. 풍요롭고 안락한 삶에 쉬이 길들여지는 나로선 지평선처럼 무지개처럼 가 닿기에 불가능한 무엇인 것만 같다. 나라는 좁은 우물 안에서 빠져나와 나 자신을 그나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나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데에 익숙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근육이 감소하고 눈이 침침해지고 피부가 탄력을 잃고 머리가 빠지고 하얘지며 얇아진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마흔을 넘기면서 나는 노화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올해로 벌써 6년차. 거울 따윈 잘 쳐다보지도 않고 패션은 남의 일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내가 거울을 통해 내 몸과 얼굴과 머리를 보게 된 것도 이 시기와 겹친다. 노화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가속화시키지 않을 순 있다. 이른바 노화의 속도에 저항하기. 아내와 아들이 함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을 비로소 누리게 된, 그러나 귀국 후 8개월 만에 2-3키로가 늘어버린 나는 이 저항에 몸을 싣기로 한다. 


나는 여전히 어떤 약으로 내 안에 쌓인 지방덩어리를 제거하고픈 욕망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는 있어도 내가 진정 원하는 건 그저 체중감량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서다. 말하자면 나는 나를 이겨내고 싶다. 합리화하는 데에 발빠르게 움직이며 그럴 때에만 이성을 부지런히 작동시키는 비겁한 나 자신을 이겨내고 싶다. 몸만이 아닌 정신도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멋있게 늙고 싶다.


많이 움직이고 적게 먹는다. 나는 이 오래된 원리에 순응하기로 한다. 내 작은 일상 속에서 이뤄낼 작정이다. 가시적인 효과는 체중 감량이라는 숫자로 나타날 것이다. 그 숫자를 확인하게 되면 기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과보단 과정에 주목하기로 한다. 절제하는 내 모습, 그리고 부지런한 내 모습을 사랑하고 싶다. 한국에서의 삶은 미국에서의 그것보다 절제와 부지런함을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환경 탓만 하고 앉아 늘어나는 허릿살과 쳐지는 뱃살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순 없는 노릇이다.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저항해야 한다. 부디 이 마음이 식지 않고 오래 유지되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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