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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이성과 허세와 관습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2. 24. 07:38

이성과 허세와 관습

아무리 이성적으로 심사숙고하고 합리적인 판단에 이르러도 관습을 넘어서지 못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살기보다는 살아온 대로 습관대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사용할 수는 있어도 대부분의 경우 이성적으로 살아가진 않는다. 왜일까. 자기 유익 때문일 것이다. 생존본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을 실행에 옮기는 행위를 우리들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짐승과 다른 인간의 특별함이라고 믿는, 인간의 우월성을 대변하는 일종의 대전제 같은 것일 게다. 이러한 대전제를 전적으로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 묻어가며 스스로의 행동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은 자기 객관화를 좀 했으면 한다. 미안하지만 그들은 착각, 대착각을 하고 있는 데다 비겁하기까지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모욕적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언뜻 들으면 인간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들리는 탓일 게다. 그러나 자신이 짐승과 다르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들은 짐승과 비교당할 때 그리 성내지 않는다. 분노하는 자체가 어쩌면 허를 찔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말이다. 

한국에 와서 사람들에게 실망한 점 중 하나는 그들의 허세였다. 특히 앞서 말한 관습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때 허세는 관습과 동전의 양면과도 같았다. 특정한 브랜드의 옷, 신발, 차, 가방 등의 외적인 것들이 마치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만나 진지하게 물으면 그들 중 대부분은 아마도 그런 것 따위에 정체성을 담는 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말에 그칠 뿐 그들의 실제 삶은 상반된다. 다들 그러지 않냐고 둘러대면서 말이다. 허세는 관습에 기생하여 연명하고 증식해 나간다.

함부로 차를 몰고, 행인에게 쌍욕을 퍼붓고, 창을 열어 담배꽁초를 버리고 침을 틱 내뱉는 인간들이 유독 벤츠나 비엠더블유를 운전하는 젊은 남성들에 몰려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아마 나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나도 한국 와서 직간접적으로 바로 옆에서 세 번 경험했는데 공교롭게도 둘은 벤츠, 하나는 아우디 운전자였다. 모두 30-4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들은 왜 그리 분노했을까, 아니 왜 그리 분노를 쉽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분노 분출 특권이라도 획득한 것인가. 

허세일 것이다. 외제차 비싼 차 몬다고 자신이 뭔가 우월해졌다는 대착각에 빠진 결과일 테다. 미국에서보다 한국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은 이들의 존재를 보며 나는 가소로움을 느꼈다. 천박하다는 말은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돈을 좀 가졌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사람을 천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돈에 대한 욕망이 이렇게나 사람을 싸구려로 만들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욕망은 누구나 느낀다. 허영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허세를 부리지 않을 순 있다. 관습에 기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 저항에 몸담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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