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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야경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3. 27. 19:17

오스트리아 빈 (비엔나) 나들이
: 사진 속 단편들 #8
- 야경


오스트리아 빈은 해가 진 이후에도 걷기에 안전했다. 미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화려한 밤거리를 등진, 어두운 뒷골목을 연상시키는 후미진 거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미국에서 11년 (그중 엘에이 근교에서 6년)을 살다 온 나로서는 일종의 충격이었다 (미국에선 일반적으로 안전을 위해서 밤에는 걸어다니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충격이 부러움으로 바뀌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경찰차 보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낮에도 수시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다니는 경찰차로 인해 긴장과 불안이 조장되는 미국의 거리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빈번한 경찰차의 순찰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깨닫는다. 정말 안전하다면 경찰차의 순찰 자체가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걷는 여성도, 유모차를 밀고 가는 주부도 해가 졌다는 사실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그들은 낮과 다름없이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마주친 눈빛에서 아무런 경계심을 느낄 수 없었다.

야경을 이루는 건물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아파트로 보이는 평범한 건물들도 그랬지만, 다운타운 부근을 가득 메운 유서 깊은 건물들은 모두 간접 조명으로 조용히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네온싸인이나 번쩍거리는 불빛이 없어도, 아니 그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목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품위가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물론 기본 건물 자체가 워낙 고풍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낮에도 아름답고, 밤에도 아름다운 오스트리아 빈. 그 거리를 수놓은 간접조명의 건물들. 그리고 그 건물들로 둘러싸인 안전한 거리들. 그 거리를 걷는 많은 사람들. 오래 기억에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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