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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자투리 시간: 읽고 쓰기와 멍 때리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3. 31. 18:48

자투리 시간: 읽고 쓰기와 멍 때리기

이전 포스팅에서 하려고 했던 말인데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힘 빼기에 대해서 써버렸다. 잔뜩 힘을 주며 살아왔던, 동시에 내게 없는 힘을 마치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티 나지 않게 자랑하려고 머리를 굴리던, 30대까지의 아이의 인생에 대해 할 말이 많았었나 보다. 그렇다면 정작 힘을 빼고서 자투리 시간에 해야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릴없이 자투리 시간에 유튜브나 보고 앉아 있는 것은 경계하자고 이미 얘기했다. 사실 이것은 비단 유튜브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확장되는 얘기다. 딱 하루만이라도, 아니면 일과 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혹은 와이파이를 끄고 지내보라. 무엇을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이미 당신은 중독 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아, 언제부터 우린 인터넷에 잠식되었던 것일까. 언제부터 인터넷은 우리의 공기가 되었던가.

역사적 혹은 인문학적 혹은 철학적인 평가와 분석은 차치하고서라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상태에서 우린 반드시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를 페절하라.

건전한 시간 때우기로 여기서 나는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첫째, 읽고 쓰기. 둘째, 멍 때리기. 이 둘은 실제 내가 주로 사용하는 것들이다.

먼저 읽고 쓴다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는 근원적인 몸부림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한국에만 살아온 사람들은 읽고 쓰는 행위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 쉽게 학업과 관련시키고 공부라는, 잘못 정의된, 단어로 색칠해버린다. 미국만 가도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는데, 읽고 쓰는 건 어릴 적부터 생활화되어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교 교육에서도 한국처럼 수학과 영어에 매진하지 않고 읽기와 쓰기에 집중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건 내가 미국 교육에서 받은 긍정적인 이미지다.

말과 글의 기본적인 목적은 의사소통이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육하원칙에 따라 조리있게 표현한 결과가 곧 말과 글이다. 모든 공부나 사회생활의 기본 중 기본에 해당되는 행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저평가되어있는 경향이 짙다. 수학과 영어에 집중된 형태, 설사 그 두 과목을 암기식이 아니라 토론식으로 배운다 해도 정작 실행할 밭이 되지 않는다. 모국어로 생각을 정리하는 기본적인 자세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어찌 암기하기도 어려운 과목을 토론식으로 배운단 말인가. 이건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한국 사람끼리 모여 제대로 된 발음도 어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떠듬떠듬 대화하는 상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즉 건설적인 면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읽고 쓰는 게 고고한 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남아 도는 사람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작자들도 많다. 예전 포스팅에도 썼지만, 읽고 쓰는 건 시간이 남아 도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쫓기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다. 그러므로 읽고 쓰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스스로는 그렇게 못 느낄지 몰라도,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고한 선비의 전유물도, 한량의 전유물도 아닌,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직결된 일상적인 몸부림이 아닐까.

그러므로 자투리 시간에 읽고 쓴다는 건 가장 인간적인 일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속한다. 진입 장벽이 실제론 굉장히 낮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라. 돈이 드는가. 과외가 필요하는가. 진입 장벽이 높아 보였던 건 한국적인 문화기 낳은 병폐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장황하게 떠벌렸지만, 자투리 시간에 읽고 써보라고 나는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인식만 조금 바꾸면 삶이 확 달라질 수 있다.

두 번째로 빈 시간에 꼭 해보길 권하는 행위는 이름하야 멍 때리기다. 유식하게 말하자면 관조하기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멍 때리기는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행위와 사실상 거리가 멀다. 오히려 멍 때릴 수 있는 시간마다 유튜브나 때리는 작자들이야말로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멍 때리는 시간은 주위를 흡수하고 주위에 스며드는 시간이다. 쳇바퀴 돌리듯 쫓기던 삶에서 벗어나 한 걸음 떨어져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못 참고 동영상으로 도배하며 빈 시간을 죽이는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 삶, 멈추지 않는 삶, 쫓기는 삶의 연장선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이들의 마음은 급하고 쉽게 분노하며 자기만을 위하는 경향이 짙다. 이 시대 서로 소통 없는 수많은 작은 섬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의 중추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차라리 멍 때리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과거를 돌아보라. 타자와 세상을 생각해보라.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힘을 잔뜩 줄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힘을 뺄 줄 아는 능력임을 잊지 말라.

읽고 쓰기와 멍 때리기,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삼찰이라는 단어로 수렴한다. 이른바 관찰, 성찰, 통찰. 이 논리에 따라 유튜브로 대변되는 자극적인 동영상의 쓰나미는 삼찰을 거세시키는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겠다. 관찰하지 않고 성찰하지 않고 통찰하지 않는 사람들. 우린 자투리 시간에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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