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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힘 빼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3. 30. 23:12

힘 빼기

동시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일 사이를 신속하게 오갈 수 있는 능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일 뿐이다. 집중력이 좋은 사람은 꽤 많지만, 두 가지 일을 빠른 속도로 오갈 수 있는 능력은 희귀하므로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는 건 능력으로 인식된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이러한 멀티태스킹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시간을 늘여서 봐야 한다. 분 단위나 초 단위로 여러 가지 일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을 멀티태스킹이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면, 짜투리 시간 활용은 몇십 분 단위로 혹은 시간 단위로 여러 가지 일을 오가며 처리할 수 있는 행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다가 한 시간 혹은 삼시 분의 빈 시간이 생겼다고 하자. 대학 때 한 시간이나 삼심 분 공강 때를 떠올리면 되겠다. 과연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하려니 시간이 모자라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그 막막함. 요즘엔 십중팔구 스마트폰을 꺼내어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밀린 드라마나 웹툰을 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낄낄대며 재미있게 동영상을 시청하고 나서 난데없이 훅 안겨오는 공허함에 공황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유튜브에 노예가 되어 중독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가.

물론 당당하게 자기는 밀린 드라마를 보길 좋아하고 여러 유튜브 영상 보기를 즐긴다고, 그게 뭐 어떠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줄 안다. 그러나 그렇게 예민하게 발끈하는 이유가 나는 궁금하다. 혹시 스스로도 무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조금 배운 사람이라면, 인식론적 폭력이라는 단어를 들고나와 왜 빈 시간마다 동영상을 보는 행위를 죄악시하냐고 날카로운 철학적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눈에는 그 현학스러운 말조차도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식이 있다면, 그들에게 빈 시간에 자신처럼 동영상이나 보고 있으라고 말할 텐가. 동영상의 무한한 바다 위에 표류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부모로서 아무런 미안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따지고 판에 박힌 철학적, 인문하적 질문과 답에 묻어가지 말고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보라. 빈 시간을 매번 그렇게 허투루 보내는 행위를 권장하는 게 과연 이성과 논리의 영역에서 판단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닐 것이다. 마음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매번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이 말에 이의를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읽기를 멈추고 나를 페절하라.

빈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게 습관이 된 사람치고 성실한 사람 보지 못했다. 성실하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한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면, 게다가 직장을 가지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게 되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만 하는 일들이 (심지어 하기 싫어도)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마련이다. 성실하다는 건 하고 싶은 일만 잘해선 결코 얻을 수 없는 평판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을 잘 처리해낼 줄 알아야 한다. 나아가,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다고만 여기지 말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가능한 즐겁게 해낼 줄 아는 비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여기서 힘 빼기의 기술이 등장하게 된다. 아직도 힘을 잔뜩 주어서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런 사람을 인생의 전반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라고 보련다. 무언가가 잘 갖춰져서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는 경우라면 책임질 것이 많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아이처럼 무책임하고 나이브하게,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 한 우물만 파며 살아갈 수도 있겠다. 일의 성취는 뛰어나나 인생의 다양하고 풍성한 맛을 보지 못하고 한 면만을 쳐다보고 단조롭게 살아가는 많은 성공자들이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뭉뚱그려 힘 주기의 귀재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은 내가 원하는 인간상도 아닐뿐더러 굳이 먼저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사람들에 속한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존경하고 따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힘 빼기의 선수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평범한 중년에 접어든 어른이라면 해야만 할 일들이 언제나 넘쳐난다. 그 일들을 모두 전력을 기울여 처리해내기에는 인간의 몸을 입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 바로 여기서 힘 빼기의 기술 (이를 지혜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이 필요하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일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몇몇 소수의 일들만 전심을 기울이거나 전력을 다한다. 선택과 집중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다른 일들을 버리거나 하지 말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힘을 빼고 적당히 할 줄 알아야 한다. 성실함을 갖추게 되는 비법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런 사람을 지혜롭다고 말한다.

보다 깊고 보다 풍성한 삶을 살고 싶다. 힘 빼기의 지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성실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섰다면 특히 더 그래야 한다고 믿게 된다. 멋지게 늙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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