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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빈 시간: 읽기와 쓰기로 채우다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4. 17. 22:06

빈 시간

빈 시간이 생길 때마다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쫓기던 나날들에는 특히 더 그랬다. 할 줄 아는 것이 학업 혹은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지겨워지거나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무엇이든 자유와 해방을 만끽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해야만 했다. 다행히 나는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모든 빈 시간을 자거나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하면서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운동도 날씨가 좋아야 하고,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기에 나 혼자 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나는 지금은 아무런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탕진했다.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흘려버린 소중한 시간들에 대한 죄책감이 늘 가슴 한 편에 남아 있다.

서른 후반에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게 되면서 나는 다시 읽기와 쓰기로 나의 빈 시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것조차 불안했다. 일, 일, 일을 해야지, 무슨 생각으로 책 따위를 읽고 있냐는 내면의 목소리에 저항해야 했다. 독서란 나에게 있어 시간이 남아 도는 인간들이나 해대는 짓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읽기와 쓰기가 일상으로 자리잡게 되기까지의 여정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은 수많은 층이 있겠지만, 나는 그것들 중 하나의 작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경험은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며 나에게 흔들리지 않는 초석 같은 순간으로 자리잡게 된다.

읽기와 쓰기를 하며 빈 시간을 보낼 때 이제 내 마음에는 불안이나 염려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빈 시간을 나는 더 고대하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내 안의, 내가 모르는 내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어떤 읽기를 통해 어떤 쓰기를 하게 될지, 어떤 순간에 어떤 생각이 들어 어떤 문장들이 터져나올지 기대가 되는 것이다. 현재 기획하고 있는 책이 세 권이다. 아무것도 되어진 게 없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내리라는, 이 근거 없는 믿음이 내 안에 충만하다. 부디 이 충만함이 거품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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