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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기억에 남는 삶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6. 11. 23:37


기억에 남는 삶

아직도 관광지 주변에 떳떳하게 포진한, 21세기의 편의점을 여전히 대신하고 있는 조그만 슈퍼마켓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 기억은 금세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학창 시절은 1990년대다. 나의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포함하는 1990년대. 오늘 가족과 함께 방문한 충북 제천에 위치한 의림지에서 나는 그때의 향수를 강하게 느꼈다. 우린 오리배도 탔는데, 30분간 페달을 밟느라 지친 노예 1 (나)과 노예 2 (아들)을 위해 공주 (아내)는 바로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아이스크림을 하사하시었다. 그런데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사냥 반쪽을 먹으며 땀을 식히는 동안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기억은 공감각적인 법이다. 1990년대의 슈퍼마켓과 오리배를 눈으로 보고, 더위사냥을 입으로 먹으며, 한동준의 노래를 귀로 들으니 나는 어느새 20세기말의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한 살 차이나는 아내 역시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삶을 살고 싶다. 순간을 알아채며 살고 싶다. 혼자 빨리 가는 것보다 함께 천천히 가겠다. 요즘 생각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의 패러디다. 혼자서 명언이라 생각하는 내가 웃기기도 하지만, 생각할수록 명언이라는 생각이다. 다음과 같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늦게 일어나는 새를 기다려야 한다.’ 이유는? 함께 가기 위해서다. 이는 어느 역전된 명제와 일맥상통한다. ’First come, first served’가 아닌, ‘First come, first serve!’ 그렇다. 수동형이 아닌 능동형이다. 대접받으려 하지 않고 먼저 대접하는 삶. 부지런한 사람이 먼저 섬기는 자세로 약한 자들을 돕는 삶. 그리고 본전 생각하지 않고 섬기는 자체에 만족하는 삶. 내가 요즈음 생각하는 ’기억에 남는 삶‘의 모습 중 하나다. 앞으로 살아내고 싶은, 살아내야 할 삶의 모습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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