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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장기전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6. 19. 17:21

장기전

기생충처럼 책상에 붙어 앉아 있다고 해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듯, 대부분의 장기적인 일은 그것에 올인할 때 효율이 떨어진다. 당연한 얘기지만 장기전은 단기전과 다르다. 100미터 달리기는 숨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래야 더 빠르다. 그러나 마라톤은 그럴 수 없다. 관건은 숨을 어떻게 쉬는지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지속할 줄 아는 힘. 이것이 장기전의 핵심이다.

질문: X만 하면 과연 X를 잘 할 수 있을까? (단, X는 장기전 종목 중 하나. 이를테면, 공부, 연구, 글쓰기 등)

상식처럼 알고 있겠지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나는 여기서 여유와 낭만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적당히 쉬면서 하라는 엄마의 조언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대신, 새로움과 낯섦에 노출되는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흔히 ‘쓸데없는 짓’, 혹은 ‘시간낭비’라고 알려진 행위들의 유용성에 대해서다. 이런 행위들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입힌 작자들은 아무래도 단거리 주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단거리 경주에서 승리해본 경험이 있는 성공한 사람들일 것이다.

단기전에 승리해봤다고 장기전에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유아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자꾸만 단기전의 승리 경험을 기반으로 장기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조언을 던지는 작자들을 보면, 그들의 갑갑함과 답답함에 목이 메는 것 같다. 그들의 최대 특기는 거짓과 위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로는 쉼의 중요성을 교과서 읽듯 외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쉬고 있으면 그들을 타박하기에 누구보다도 발이 빠르다. 정죄하고 비난하는 데에 선수들이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너는 왜 이렇게 시간을 허투루 소비하고 있냐고 하면서 자칭 훈육관이 되어 혼내기에 급급하다. 자기 딴에는 그게 진심으로 그 사람을 도와주는 거라고 철저하게 믿으면서 말이다. 나는 이들이야말로 장기전에 진입하여 지난한 여정을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주의하고 피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운동을 언제나 즐겨왔다. 7년 전부턴 읽기와 쓰기도 나의 일상이 되었다. 읽기 같은 경우엔, 리더라고 자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소설을 즐겨 읽는다. 소설 중에서도 21세기 현실과 무관한 듯한 고전 문학을 즐겨 읽는다. 과연 나는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운동하고 읽고 쓰는 시간에 직업적인 일에 더 집중한다면 더 훌륭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나는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것들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과라도 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무용성의 유용성의 힘을 믿는다.

덧붙여, X만 열심히 해서 X를 잘해내는 인재들은 한국형 인재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미국이나 유럽 친구들은 일을 하면서도 늘 놀 줄 알았다. 일과 쉼을 구분할 줄 알았고, 쉼을 누릴 땐 전문성을 띨 정도로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일하던 도중에도 늘 그 재능을 이용하여 휴식을 취할 줄 알았고, 그 휴식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거나 발상의 전환 같은, 의도하지 않을 때 우연처럼 찾아오는 순간들을 만난다고 고백했다. 내가 책에서 읽은 여러 위인들도 비슷한 부류가 많았다. X만 열심히 해서 X를 잘해내는 인재들의 약점은 X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All or None의 성공확률 0.00001%의 도박 같은 인생 (단, 성공한 자들도 대부분은 운이 좋아서임)을 사는 사람들. 삶이 외통수인 사람들. 인생은 여러 곡선임이 분명한데 자꾸만 직선으로 만들려고 불가능한 애를 쓰는 사람들. 이들 곁에는 이들과 비슷한 부류만이 맴돈다. 다른 방면의 친구는 사귈 수도 없고 유지할 수도 없다. 스스로 점점 고립되고 섬이 되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이런 이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인생이 너무 단조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풍성함과 깊음을 추구하고 싶다. 수많은 뾰족한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 앉아 자신이 최고라는 찰나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살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 짧고 단 한 번이니 치열하게 올인해야지!” 나는 말한다. “인생 짧고 단 한 번이니, 도박같은 삶은 접어두고 가능한 풍성하고 깊은 삶을 추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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