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삼찰을 통한 자기 객관화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6. 14. 15:13

삼찰을 통한 자기 객관화

무언가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다른 큰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게 보통이다. 이는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며,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도 이는 마찬가지다. 무언가 큰 것을 버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큰 것을 채워야 한다. 즉 버리거나 채우는 것은 어느 한쪽만 할 수 없다. 둘은 함께 일어난다. 즉, 버리는 것도 채우는 것도 아니라 단지 대체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은 본성상 무언가를 갈망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욕망을 가지기 때문이고, 그 결과 텅 빈 내면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의미 중독자라고 하지 않던가. 텅 빈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의미는 무언가가 있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운다고 하는 사람도 결국 자기 자신으로만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은 관성에 이끌리고 습관에 지배를 받으며 객관적이기 힘들뿐더러, 자신을 합리화하여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등의 기준을 자기 유익에 맞추는 성향을 가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아무나 잘 해내지 못하는 것. 이는 한 사람의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나는 이에 대한 답으로써 어떤 행위 하나하나를 말하는 것보단 방향성을 언급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저마다 다른 삶의 맥락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방향성은 곧 그 사람의 세계관 혹은 가치관을 대변한다.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누구나 빈 도화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없다. 이미 살아온 나날들이 누적되어 그것들만의 색과 무게를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 나를 가만히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만 관찰해서는 나를 알 수 없다. 나는 타자가 아닌 사람, 타자의 여집합이다. 나와 타자가 세상을 이룬다. 그러므로 타자와 세상을 관찰하지 않으면 나를 알 수 없다. 성찰은 관찰에서 나온다. 외부를 관찰할 때 내부와 공명이 일어나고 비로소 관찰은 성찰이 된다.

관찰과 성찰 과정에서 자기 객관화에 이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통찰로 나아가지 못한 채 성찰에 머물기 때문이다. 늘 자기반성만 하고, 늘 문제점을 찾아내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타자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고 싶어 하는 사람. 이렇게 스스로 섬이 된 자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다.

관찰에서 성찰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성찰은 자기 객관화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자기 안에 갇힌 성찰은 자아를 더 견고하게 만들 뿐이다. 열매는 옹졸과 편협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런 성찰은 성찰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명상이 치우친 자기 합리화나 자기기만으로 종종 치닫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관건은 통찰로 나아갈 수 있는지 여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통찰은 관찰과 성찰을 거쳐내며 타자와 세상과 자기 자신을 모두 조화롭게 바라볼 줄 아는 자가 개별적인 사건으로부터 보편적인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를 이루지 못하면 통찰은 이룰 수 없는 영역 너머에 존재하게 된다. 물론 통찰이랍시고 꼰대 짓을 하는 인간들도 많다. 미안하지만 그건 통찰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자기 안에 갇힌 성찰의 잘못된 일반화일 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통찰은 자기 객관화를 전제로 한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기껏해야 유아적인 떼를 쓸 뿐이다. 

이렇게 관찰, 성찰, 통찰 (나는 이를 삼찰이라 부른다)로 이어지는 일련의 성숙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몸글의 서두에서 말한 선택을 비로소 지혜롭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라고 나는 믿는다. 자기 이익에만 치중하지 않을 수 있고, 한 방향에만 치우치지 않을 수 있으며, 자기기만에도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의 선택을 나는 신뢰한다. 내가 그런 사람이 먼저 되어야겠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이 깃드는 불편한 삶  (0) 2023.07.03
장기전  (0) 2023.06.19
기억에 남는 삶  (0) 2023.06.11
여유와 지혜  (0) 2023.05.14
고속의 적막  (0) 2023.04.1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