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대한 감상문에 대한 후기

어젯밤 카뮈의 에세이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대한 감상문을 남기기까지 그 글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5년 전 책세상 버전부터 치면 족히 열 번은 넘을 것이다. 단순히 어렵다고 표현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다. 차라리, 황홀할 정도로 반짝이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다가 맥락을 놓쳐버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놓쳐버릴 수밖에 없는 글이라고 해야 이 에세이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를 표하는 게 아닐까. 아, 살아있을 때 이런 글을 만나다니!

반짝이는 문장들의 치명적인 가니쉬는 낯선 이국의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만 보아도 나는 평생 이 글을 떠올릴 것 같다. 티파사, 압생트 등의, 소리 내어 읽으면 거센소리와 된소리로 읽혀 시적인 음악을 연상케 하는 이 단어들. 신형철은 정확한 문장을 집 짓기에 비유했다. 정확한 문장에 필요한 단어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는 단어 선별에 유난하다. 이를 조금만 더 확장시켜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적용해 봐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이는 티파사의 운명을 결정해 버리고 티파사를 재정의해 버린다. 티파사에 가면 이 글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티파사는 곧 카뮈의 이 글과 같다고. 문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티파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막연한 동경도 어쩌면 이 글을 읽은 독자의 적절한 예의일지도 모른다.

덧붙여, 책세상 버전의 ‘결혼, 여름’은 2차원 텍스트에 머문다면, 녹색광선의 ‘결혼, 여름’은 3차원 입체의 공감각적 향연이다. 편집자의 고뇌가 깔끔하게 승리를 거머쥔 쾌거를 나는 이 책의 하늘과 바다를 닮은 표지 색깔과 이 책을 펼치면 등장하는 알제리의 사진들, 그리고 녹색광선 특유의 판형과 그립감, 그에 따른 가독성에서 찾는다. 대 번역가 김화영의 번역과 장소미의 번역 차이를 나는 체감하지 못했다. 한 가지 이유는, 카뮈의 글은 아무리 뛰어난 한국어 번역도 원문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두 번역을 모두 읽어본 나에게 남은 건 한국어 번역을 가볍게 침투하고 초월한 카뮈의 탁월한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티파사의 이미지는 김화영도 장소미도 모두 훌륭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독자들은 굳이 2차원 텍스트에 머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참고로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책세상의 ‘결혼, 여름’을 재구입했었지만, 녹색광선의 ‘결혼, 여름’은 새 책으로 두 권이나 구입했다.  

'읽기와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정한욱 선생님의 추천사  (6) 2023.08.30
책 읽기와 책 읽는 습관  (0) 2023.08.24
고향: 쓰기  (0) 2023.07.30
깊은 산중: 보고 읽기  (0) 2023.07.28
또 읽기와 쓰기  (0) 2023.07.2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