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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책 읽기와 책 읽는 습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8. 24. 10:16

책 읽기와 책 읽는 습관

"딱히 할 일이 없을 땐 책이나 읽자." 말하긴 쉬워도 행하긴 어려운 일이다. 책 읽는 행위가 어렵다는 게 아니다. 책 읽는 습관 들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저 위의 문장은 독서하라는 가벼운 요청을 넘어선다.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무거운 제안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사람들이 빈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 열 명 중 넷은 동영상을 시청한다. 둘은 게임을 한다. 주로 십 대에서 이십 대 아이들이다. 다른 둘은 목적 없이 이 앱 저 앱 정신없이 오가며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하다. 나머지 둘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멍 때리고 있다. 주로 어르신들이다. 나처럼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지난 8개월 버스 생활 중 딱 한 명 본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영어로 된 두껍고 글씨 작은 책을 읽고 있었다. 미국 전철 안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습관이란 무엇일까. 빈 시간에 동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멍 때리는 걸 과연 습관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고 생각대로 사는 것보단 주로 습관대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보면 이런 것들도 습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습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으로 얻어낸 습관, 그리고 수동으로 얻어진 습관. 긍정적인 습관과 부정적인 습관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좋다 나쁘다는 주관적인 판단이 강하기에 이 분류는 여기선 피하기로 한다. 적극적인 습관이 긍정적이고, 수동적인 습관이 부정적이라는 생각도 오류가 많을 것이므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버스 안으로 돌아가보자. 책 읽고 글 쓰는 습관은 적극적인 습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불편함과 위험부담을 감안하고 해내야 하며,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동영상을 시청하는 건 시대적인 관점에선 수동적인 습관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다면, 유튜브 등 기타 여러 앱을 통해 아무 생각 없어도 물 흘러가듯이 동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꼭 봐야 하겠다는 의지 없이 ‘그냥’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버스 타고 가는 시간을 활용하여 평소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는 등 시간 절약을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중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8개월간 동영상 시청하는 열의 아홉은 짧게 편집된 동영상 (Shorts, Reels 등)을 계속해서 연이어 보고 있었다. 이들이 내 눈엔 시간을 절약하는 게 아니라 죽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평소에 나는 돈을 주고서라도 시간을 사고 싶을 정도로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나는 그렇게 하릴없이 짧은 동영상 시청으로 버려지는 그들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버스 안에서 게임을 하는 것도 나는 적극적인 습관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이라고 본다. 재미있냐 없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따지는 것도 아니다. 할 게 없어서 하는 모든 행위 가운데 게임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수동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할 게 없다니. 텔레비전도 집에 없고 뉴스도 어지간해선 잘 보지 않는 나로선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데 말이다. 여기서 나는 할 일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이 말을 달리 하면, 적극적인 습관을 갖지 못했다는 말로도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동적인 습관의 다른 표현은 ‘습관 없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적극적으로 얻어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된다. 반면, 수동적으로 얻어진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고 지속 불가능하며 허무와 공황을 야기한다. 위에서 언급한 짧은 동영상 시청하는 사람과 게임하는 사람, 스마트폰 만지작 거리며 여러 앱을 종횡무진하며 온오프를 반복하는 사람은 어쩌면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짧은 동영상을 보지 말란 말이냐, 게임을 하지 말란 말이냐, 등등의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그것에 길들여지고 그것에 노예가 되어 그것 아니면 정말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만들지 말란 말이다. 나도 짧은 동영상을 종종 본다. 유튜브로 좋아하는 강의도 듣고 음악도 즐겨 듣는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에 잡히진 않는다. 

나는 책 읽는 습관을 들여보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지식의 확장 같은 거창한 목적을 달성하라는 말이 아니다. 정갈하게 정리된 생각이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으며 타자의 생각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보고, 잠시라도 나를 벗어나는 시간을 가지며 자기 객관화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내 짧은 지식과 경험으로는 책 밖에 없는 것 같다. 특히 버스 타고 가는 몇십 분의 짧은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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