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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육손의 기억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7. 8. 15:26

육손의 기억

|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 중 하나는 같은 골목에 사는 어떤 형의 손, 아니 손가락입니다. 그 형의 여섯 번째 손가락은 왼손 엄지손가락 옆에 덜 발달된 모습으로 붙어 있었습니다. 마치 성인 손가락에 아기 손가락이 액세서리처럼 하나 더 달린 것 같았습니다. 그 손가락으로는 아무것도 집을 수도 없어 보였습니다. 

“형의 손가락은 왜 그렇게 생겼어요?” 혹은 “왜 다섯 개가 아닌 여섯 개예요?”라고 직접 물어볼 정도로 그때 저는 충분히 어린 나이(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였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확신에 사로잡혔고 결국 못 본 척했습니다. 그날 집에 들어와 부모님께도 그 사실을 꺼내지 않았고 한동안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그것은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할 그 무엇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마치 금지된 무엇인가를 본 사람처럼 말이지요.

어느 날 친구들과 놀다가 그 형의 손가락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아주 잠시 얼어붙었지만, 드문 경험을 떠벌리는 자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입니다. 그들 역시 그 형의 손가락이 여섯 개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반은 놀랍다는 표정 나머지 반은 흉측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사실 저도 겉으로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비슷한 심정이었기에 그들을 뭐라고 나무랄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그 형을 ‘육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 듣는 단어였습니다. 귀에 쏙 박혔습니다. 듣자마자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육손이란 손가락이 여섯인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안 된다는 무언의 힘도 느꼈습니다.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들의 용어 같았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세상엔 성격이나 얼굴뿐 아니라 몸의 구조도 저와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진실을 막연하게나마 오감으로 깨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엔 손가락이 여섯인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저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손가락이 여섯인 사람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람도, 더 적은 사람도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이상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의 3부의 첫 꼭지 ‘손가락, 발가락: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세포들’의 도입부를 발췌한 부분입니다. 벌써 이 책이 출간된 지 6개월이 지났네요. 날벼락 같았던 계엄, 내란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출간되어 더 정신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것 같고요. 저자인 저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출판사와 상의하여 노화를 다루는 1, 2부가 앞으로 배치되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인 3부는 뒤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부가 발생생물학의 정수를 다루는 부분이랍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3부 때문이었고 가장 먼저 쓴 것도 3부였답니다. 출간된 지 6개월 만에 3부를 소개하고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한 꼭지씩 부분 발췌해서 포스팅할까 합니다.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발생생물학을 통해 이해하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식론적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줄 믿습니다. 아직도 구매 안 하신 분들이 있다면 얼렁 서점에 가셔서 직접 구매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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